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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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섬진강 나루에서



오늘은 섬진강의 한적한 나루에서 이 엽서를 띄웁니다.
지리산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강가의 주막(?)에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싯구가 있어서 이곳에서 엽서를 띄우기로 하였습니다.

강나루 주막의 술은 물을 타서 묽기도 하고
봄산에서 내려오는 나뭇짐에는 꽃이 반이나 섞여 있구나
酒沽江店多和水 柴下春山半雜花.

지금은 물론 주모(酒母)가 술에다 물을 섞을 여지도 없고 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나무꾼이 있을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섬진강 맑은 물과 강언덕에 피어난 봄꽃들의 화사함은 변함없는 시정(詩情)을 담고 있습니다. 개나리ㆍ진달래ㆍ산수유와 같은 이른 봄꽃은 땔감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뭇짐에 올라 있고, 물 탄 술(和水酒)은 한마디로 진국이 아닌 함량미달의 불량품임에도 불구하고 주모의 영악한 상혼(商魂)을 탓하기는커녕 그 묽은 술잔을 들고 시를 읊조리는 나그네의 훈훈한 마음이 춘풍처럼 불어오는 듯 합니다.
춥고 긴 겨울을 끝내고 바야흐로 꽃과 함께 다가온 새봄의 따사로움이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적셔주고 있는가를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꽃가지가 섞인 나뭇짐과  물탄 술의 이야기는 새봄의 기쁨이 열어주는 모든 사람들의 여유이면서 너그러움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싯구는 봄날의 푸근함 대신에 문득 아픈 기억을 되살려 놓습니다.
물 탄 술의 이야기가 아니라 ‘물 탄 피'(和水血)의 이야기입니다.
대학병원에서 피를 팔기 전에 매번 찬물을 잔뜩 들이키고 나서 채혈실로 들어갔다는 어느 친구의 기억이 강물처럼 가슴에 흘러듭니다.
하루의 일당을 받지 못하는 날이면 집에 들어갈 얼굴이 없어서 합숙소에 들어 밤잠을 자고 새벽일찍 대학병원으로 달려가 피를 팔고 그 돈으로 동생들의 끼니를 사서 집으로 들어가는 그런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어둑새벽 대학병원의 수도꼭지에서 양껏 찬물을 들이키는 그의 모습입니다. 물을 타서 좀 더 많은 피를 팔려고 했던 그의 모습입니다. 아니 좀 더 적은 피를 팔려고 했던, 좀 더 많은 피를 몸속에 남기려 했던 그의 허망한 노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자기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는 그의 단호하고도 위악적(僞惡的)인 표정입니다. 도살장에서 소의 입을 벌리고 강제로 물을 들이키게 하는 사람도 있고 불량상품을 만들어 내놓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자기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그의 당당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단호한 어조와 그 침통한 표정에서 그것은 그가 상당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는 반어(反語)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들이킨 물이 곧장 혈관으로 들어가 피를 묽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그의 가난한 지식이 마음 아픕니다. 그리고 물탄 피룰 팔았다는 양심의 가책을 애써 숨기려하는 그의 여린 마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는 동생들의 끼니를 위하여 좀 더 많은 피를 만들려고 했던 형이었고, 그리고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좀 더 많은 피를 남기려 했던 노동자였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설령 그가 들이킨 새벽 찬물이 곧바고 혈관으로 들어가 그의 피를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얻는 부당이득의 용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부정은 흔히 그 외형이 파렴치하고 거칠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마치 맨손으로 일하는 사람의 손마디가 거친 까닭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합법적인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정작 딱한 것은 그 부분을 줌렌즈의 피사체로 잡는 세상사람들의 춘화적(春畵的) 탐익이며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당의(糖衣)에 길들어 있는 우리들의 빈약한 의식(意識)이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가에 앉아 가난한 사람들의 부정을 매도하지 못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피는‘상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신의 글을 상기합니다. 피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피를 축내는 노동은 어떠한 달성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아니라는 당신의 글을 다시 읽습니다.
그것이 곧 학습이고, 그것이 곧 예술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노동이야 말로 경제성장의 최고치(最高値)이고 사회복지의 이상(理想)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를 때를 일컬어 우리는 그것을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언덕의 봄꽃과는 달리 섬진강의 강물은 아직도 차디찹니다. 강물에 조용히 손 담그면 팔뚝을 타고 오르는 강물의 시린 한기가 전률처럼 가슴을 에입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는 아마 자신의 추억을 돌이켜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봄꽃 한 송이를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도 우리는 아름다운 꽃의 추억을 가져야 합니다.
하물며 비뚤어진 오늘의 그릇들을 먼저 바로잡는 일 없이 세상의 진정한 봄을 맞이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킴으로써 완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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