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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잘츠부르크까지
하늘을 나는 새는 뼈를 가볍게 합니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당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입니다. 오늘은 그 노래 속의 그 보리수 그늘에서 빠듯한 여정을 몰라라 하고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부러워할 것 같아 엽서 띄우기가 민망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횔드리히스뮐레에 왔습니다. 노래 속의 성문은 없어졌지만 3층 목조 양옥이 그림처럼 하얗게 서 있고 양옥 옆에 계단을 내려가면 뜰에는 우물과 보리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뜰에 이어진 1층 현관 입구에는 마네킹 슈베르트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이 집은 슈베르트가 4년 동안 하숙하며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곳입니다. 마침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없어 한적하기가 흡사 슈베르트의 생시 같습니다. 아침 햇볕을 담뿍 받은 옥외 티테이블에 앉아 비엔나 커피의 감미로움과 함께 모처럼 얻은 한가로운 휴식에 젖어봅니다. 그러나 이곳은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던 슈베르트가 서른 살 짧은 생애의 마지막 해를 보낸 곳입니다. 뮐러의 시에서 자신의 고뇌를 읽으며 겨울 나그네의 아픔을 통해 한 가닥 위로를 얻으려 했던 슈베르트의 고독한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에 대하여 내가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열중했던 가곡(歌曲)의 세계는 다른 클래식에 비하여 비교적 친근합니다. 가곡은 민요와 마찬가지로 그 공감대가 매우 넓은 것이 마음에 듭니다. 가곡과 민요가 넓은 공감대를 갖는 까닭은 마치 나무가 뿌리를 땅에다 묻어두고 있듯이 서민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서민들의 삶이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서로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넓게 공감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하여 클래식의 세계는 내게 너무 아득한 거리감을 느끼게 합니다. 나는 '빈 필의 소리'가 어떠한 깊이를 갖고 있는지 알 수도 없고 더구나 그것이 베를린 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더구나 오스트리아에서 만나는 수많은 음악의 거장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한없이 작아지게 합니다. 천재들이 보여주는 어떤 절정은 밤하늘의 아득한 별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펼쳐 보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클래식은 유럼 최고의 왕가인 합스부르크 가를 중심으로 하는 궁정과 귀족 사회의 고귀한(?)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러한 고귀한 정서는 곧 사회적 권위가 되고 이데올로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클래식의 대표적 형식인 소나타만 하더라도 그 형식의 완고한 틀이 곧 중세적 질서라 할 수 있습니다. 제시-전개-재현이라는 도식, 즉 A→B→A라는 소나타의 순환 구조 역시 중세사회의 구조라고 하였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음악의 깊은 세계에 대하여 무어라 언급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빈 필의 오케스트라든 미라벨 궁전의 체임버뮤직이든 내가 클래식에서 느끼는 것은 완고한 틀과 이 틀이 강요하는 고도의 긴장감이었습니다. 나는 고음과 저음, 변화와 속도가 무상하게 전개되는 선율 속에서 내내 정신적인 차렷 자세로 긴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음악이 갖고 있는 인간 순화 기능이라고 주장한다면 더 시비할 여지가 없지만 나는 하이든의 빛, 모차르트의 선(線), 베토벤의 설득력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고전음악의 형식과 질서가 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기승전결이라는 형식으로 세상과 사물의 변화를 담는 틀을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개의 음계로 세상을 그려내려는 시도 자체는 어차피 무리일 수박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음(音)을 음(音)에게 돌려주라"며 클래식을 향하여 던진 존 케이지의 '돌멩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빈의 도나우 강에서 출발하여 그림 같은 오스트리아 전원을 지나 잘츠부르크의 잘차흐 강에 이르는 기찻길은 모차르트가 가장 좋아했던 길입니다. 빈에서 이 철길을 따라 도착한 잘츠부르크는 그러나 애꿏게도 내가 머무는 사흘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날씨 푸념을 듣던 현지 사람은 이곳은 365일 내내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츠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펼쳐 보이는 화창한 잘츠부르크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기적 같은 그림입니다. 비 그친 잠시 동안에 나타나는 그림이 더욱 아름다우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잘츠부르크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비 내리는 잘츠부르크에는 온통 관광 상품인 모차르트 초콜릿만 흐드러지게 도시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빈의 소리'도 그렇고 '잘츠부르크의 풍광'도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의 세계도 역시 우리들의 관념 속에 들어앉은 환상이며 신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금치 못합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 주페, 그리고 모차르트의 가묘(假墓)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빈의 음악가 묘역에서의 일입니다. 베토벤의 묘비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한국 여인은 도무지 일어설 기색이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하여 그녀가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은 매우 쓸쓸했습니다. '빈을 향한 수많은 음악인의 동경은 스스로 두 겹의 질곡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물론 중세의 완고한 질서이며 다른 하나는 예술이라는 신화적 질서입니다.

 

나는 빈에서 잘츠부르크에 이르는 동안 비록 바쁜 여정이기는 했지만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와 별처럼 드높은 고전음악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보리수 그늘처럼 고뇌를 거둬주는 정다움 속에 쉬기도 하고, 밤하늘의 드높은 별처럼 우리를 작아지게 하는 클래식의 음률 속에 꼿꼿이 서 있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물론 보리수 그늘의 비엔나 커피가 마음 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인간은 모름지기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하듯이 비록 자기가 한없이 작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천재를 바라보고 신화를 읽어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픔을 달래줄 위안을 구하는 것 못지않게 준열한 자기 비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려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뼈 속을 비워야(骨空) 합니다. 그 위에 다시 비상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클래식의 세계가 별을 바라보게 하고 스스로의 오만을 준열하게 꾸짖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스스로를 작게 가지려는 겸손함이야말로 어떠한 시대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인간적 품성이라고 믿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두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나는 국립미술대학에 갔을 때에 들은 이야기로, 만약 히틀러가 이 학교에 합격하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히틀러가 세 번이나 응시하여 낙방했던 사실을 두고 지금도 애석해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미술 재능이 꽃피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미술가로 그의 일생을 마칠 수 있었더라면 나치 독일이 저지른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이 예방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또 하나 아쉬운 이야기는 쇤브룬 궁전에서 들었던 모차르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입니다. 여섯 살 짜리 신동 모차르트가 궁정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을 때의 일입니다. 모차르트의 천재에 경탄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그의 소원을 물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자기보다 두 살이나 연상인 앙투아네트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하여 또 한번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앙투아네트 공주가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고 가난한 음악가의 아내로 일생을 살 수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 빈 사람들이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아쉬움입니다. 음악의 도시답게 빈 사람들이 아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일화 역시 인간적인 향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왕가가 민가를 구속하고, 별이 나무를 내려다보고, 천재가 필부를 업신여기는 문화가 우리의 삶을 도도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클래식의 세계가 여전히 우리들에게 가깝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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