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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새로운 인간주의는 스스로 쌓은 자본과 욕망에서 독립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하늘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모든 곳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아테네 어느 곳에서든 아크로폴리스가 보입니다. 야간 조명을 받아 밤 하늘에 솟아오른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운 자태와 그것에 담긴 역사의 무게는 참으로 중후합니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는 폐허였습니다. 삭막한 석회석 돌산에 대리석 기둥 46개만이 무너져 내린 돌더미를 발밑에 굴려놓은 채 마치 고대 그리스의 뼈대처럼 하얗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수많은 행렬이 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끊임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대리석 언덕길은 사람들 발길에 닳고닳아 우윳빛으로 윤이 납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찬란했던 그리스의 고대 문명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테네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심(Omphalos)이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도, 트로이 전쟁에서 개선한 아가멤논 왕의 미케네 궁전도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로 시작되는 사랑의 고장 코린토스도 60만 인구로 번영을 구가하던 옛 모습은 간 곳 없고, 이제는 잠자는 운하로만 남아 흥망성쇠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수많은 신들과 그들의 이야기도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를 찾아옵니다.

 

무엇이 삭막한 이 언덕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모으는 것일까. 그리스에서는 그리스를 보지 말고 로마를 보고 유럽을 보라던 당신의 충고가 떠오릅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오르면 눈앞에 남아 있는 황량한 폐허와는 상관없이 그리스가 그 길고 어두운 역사를 꿰뚫고 면면히 이어져온 까닭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때는 기독교 교회로, 한때는 이슬람의 모스크로, 그리고 심지어는 탄약고로 그 운명이 변전되면서도 의연히 그리스의 신전으로 남아 있는 파르테논의 신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폐허는 과거가 아니며 문명의 종말은 소멸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더 큰 확산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비밀을 담지하고 있는 상징 체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모름지기 ‘사람’을 주목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과연 그리스의 ‘높은 곳(acro)'에 세운 것은 신상(神像)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공간의 중앙에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의 사람은 동양화 속의 사람과는 판이합니다. 인간이 한 개의 점경(點景)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들로부터 우뚝 독립해 있는 것이 그리스의 인간입니다.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독립한 인간들이 수많은 언어를 만들어내고 대화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것이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영웅주의이며 그리스의 인간주의이고 휴머니즘입니다. 그것의 정치적 상징이 폴리스인지도 모릅니다. 군주를 받아들이지않는 자유와 민주주의입니다. 모든 고대 국가들이 군주를 정점으로 한 지배 복종이라는 정치 질서를 당연한 사회 원리로 받아들이는 동안에도 그리스는 자유와 평등과 독립에 기초한 인간주의 원리에 충실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자연의 규정력이 압도적이었던 고대의 열악한 조건을 생각한다면 고대 그리스의 인간주의는 오늘날의 인간주의와는 달리 ‘너무나 인간적’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인간주의는 바로 인간의 생존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척박한 산야는 그리스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환경 조건을 실감케 합니다. 인간주의는 빈곤한 자연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키워낼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문화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의 어느 곳에서도 노장(老莊)의 유유한 자연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 인간주의의 또 하나의 모태는 바다입니다. 3,000여 개의 섬들이 마치 징검다리처럼 흩어져 있는 지중해는 바다라기보다는 ‘액체로 된 길’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위압하고 인간의 상상력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대해(大海)가 아니라 포도주빛의 다정한 앞마당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최고의 완성품으로 보고 인간을 세계의 중앙에 놓는 인간주의가 바로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이었으며, 그러한 인간주의가 외화(外化)된 최고의 가시적 형상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인간주의는 먼저 그 규모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대해처럼 위압적인 크기가 아니라 지중해 같은 휴먼스케일(Human scale)입니다. ‘제왕’의 크기가 아니라 ‘시민’의 크기입니다.
크기뿐만 아니라 착시 현상까지 고려한 기둥의 배흘림(Entasis)과 정치한 기하학적 질서, 그리고 자기 규모 이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상승감을 연출해낸 그리스 인들의 정신은 과연 자기 충족, 자기 완성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질서한 소재에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는 고전미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중세의 천 년 어둠을 뚫고 소생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파르테논 신전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그리스 인들이 도달한 인간주의의 절정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자기 완성, 자기 충족의 인간주의가 달려갔던 ‘인간주의 이후’에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사회가 무한한 정염으로 몰두해온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를 향하여 달려간 인간주의의 오만과 독선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밖으로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스스로 인간의 터전을 황폐화하고, 안으로는 수많은 타인을 양산하여 맞세움으로써 인간 관계를 비정한 것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맹목(盲目)이 되고 있는 인간주의의 음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수니온 만의 포세이돈 신전에서 지중해의 일몰을 보았습니다. 세찬 겨울 바람이 석주(石柱)에 기대선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놓습니다. 이미 포도주빛이 아닌 검은 바다 위로 파르테논 신전이 신기루처럼 떠올랐습니다. 인간주의의 절정인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이제는 자기의 소산(所産)인 문화와 물질 속으로 함몰해가고 있는 오늘의 인간주의를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현대라는 또 하나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 바야흐로 새로운 인간주의를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 쌓아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리스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달려온 셈입니다. 그 먼 길을 등뒤에 지고 다시 더욱 먼 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인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는 오늘도 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를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들이 저마다 머리에 이고 있는 폐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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