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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스웨덴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눌리게 됩니다
만약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의 세금은 0%입니다. 그리고 완벽한 공산주의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의 세금은 100%입니다. 스웨덴의 세금은 75%수준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스웨덴 사람들이 자기나라를 소개하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세금이 너무 많다는 불평 같기도 하고 그들이 누리는 사회복지의 수준에 대한 자랑 같기도 합니다. 한 국가의 성격을 담세율로 설명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한 나라가 누리고 있는 복지 수준이 공공 지출의 비율로 설명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참으로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어왔으며 그만큼 복잡한 내용 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복지국가는 20세기가 지향해가야 할 가장 궁극적인 목 표로 제시되기도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해 가는 대안적(代案的) 개념으로 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반대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유화(宥和)함으로써 자본주의 그 자체를 유지하는 보정개념으로 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복지는 그만큼 다양한 시각을 허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나는 스웨덴에 있는 동안 이러한 시각에 관한 그들의 견해가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웨 덴에서는 그러한 시각이 없었습니다. 복지국가개념을 그러한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어 쩌면 냉전 이데올로기의 도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답변은 매우 우회적인 것이면서도 이러한 틀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목표에 관한 논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표와 방법에 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 그 사회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를 확인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성한 개념규정과 복잡한 논의는 실상 불신이 낳는 거대한 정신의 소모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스웨덴에서 가장 부러운 것과 가장 부럽지 않은 것을 엽서로 띄워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가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스웨덴에서 몹시 부러운 것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신뢰였습니다. 마침 스웨덴 조간신문에는 스웨덴 남자와 결혼한 미국인 부인이 미국에 전 남편과 살고 있는 자녀를 보러가는 데 필요한 여비를 스톡홀름 시에서 지급하라는 판결문을 싣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스웨덴의 복지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정부의 공공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67%에 이르는 규모로서 OECD 24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부러운 것은 이러한 복지의 양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입니다. 실업, 노후, 의료, 주택 그리고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이 생활의 대부분인 우리들로서는 무척 낯선 것 입니다. 빈과 부, 귀와 천의 의미가 극히 왜소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 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경멸받는 것이 축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에는 실업률의 증대, 정부지출의 급증, 세수(稅收)의 감소 등 스웨덴이 당면한 경제적 위기감이 거론되고 따라서 당연히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사람들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낸 세금은 언젠가는 다시 그들을 위하여 쓰여진다는 생각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웨덴의 이러한 사회복지는 스웨덴이 축적한 경제적 잉여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은 물론입 니다. 스웨덴은 1,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유럽 국가였습니다. 전쟁 특수(特需)와 전후 복구과정에서 누릴 수 있었던 경제성장이 일찌감치 스웨덴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바로 그 시기에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빼앗기고 다시 모든 것을 전화에 불태우고 말았던 우리들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습니다.
물론 경제적 잉여는 복지사회의 가장 기본적 물적 토대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빈부의 격차만 더 크게 벌여놓음으로써 빈익빈 부익 부의 사회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스웨덴에도 물론 부자가 있지만 스웨덴 제1의 재벌의 총재산이 우리 돈으로 800억 원이라고 하였습니다. 800억 원이 물론 적은 액수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우리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경제 성장과 경제적 잉여의 축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물적 부의 사회적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이 물적 부의 사회적 관리에서, 특히 사회적 합의에서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합의과정은 노동연합(LO)을 중심으로 한 노동부문의 강력한 정치력에 뒷받침되어 있고, 이 러한 정치력이 1930년대부터 근 반세기에 걸친 사회민주당 정권의 기반이 되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사회민주당의 복지정책이 오늘날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골격을 만들 어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일류 정치가 일류 경제, 일류 사회의 기본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스웨덴에서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궁금해하는 '부럽지 않은 것'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것은 피곤함입니다. 스웨 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깨끗하고 반듯한 도시입니다. 도로, 건물, 자동차는 물론이고 보도 블 록이나 크고 작은 간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고급품이면서 잘 관리되고 있음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도시입니다. 잘 사는 나라의 모습입니다. 넓고 푸른 공원에는 햇볕을 받고 있는 사 람들이 무척 한가롭습니다. 그들의 여유와 느긋함이 부럽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한가로운 풍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60대의 노년입니다. 스웨덴에는 물론 노인이 많기도 하지만 곳곳에 괴어 있는 피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가 되기도 하고 취업보다는 차라리 실업연금 수혜자로 안주하기도 합니다. 작년 한 해동안 33,000쌍이 결혼하고 21,000쌍이 이혼했습니다. 스웨덴에서 부럽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러한 노년같은 피곤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넓게 괴어 있는 무관심과 피곤함 때문에 나는 이 도시가 갖고 있는 부러운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결코 정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부럽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富)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사람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리게 된다'는 옛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을 늘 푸른 청년으로 세우는 문화가 이곳에서는 퍽 아쉽습니다.
'베리야 노인센터'에서 받은 인상 역시 매우 착잡하였습니다. 훌륭한 시설과 간호를 받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가득히 풍겨오는 공허감은 비단 노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로부터 아득히 먼 곳으로 물러나 있는 그들의 외로움은 마치 '앞당겨진 죽음'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어린 남매가 입양해 있는 가정을 찾아가면서 느꼈던 심정도 내게는 아픔이었습니다. 자식을 키울 수 없어 먼 이역 땅으로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그들이 입양된 집은 매우 훌륭한 가정이었습니다. 양아버지는 의사이며 양어머니는 연극연출자로서 그들 내외에게는 예쁜 친딸이 있었습니다. 나의 상식으로 볼 때 입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키우는 일의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생각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훌륭한 부모와 언니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것 은 한국에서 온 어린 남매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보다 더 아름답게 자라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자랄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한 몇 시간동안, 나로서는 매우 어색하고 착잡했습니다. 나의 착잡함은 우리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잘 알기 때문에 갖게 되는 안도감과 함께 머지않아 이곳에 만연하고 있는 피곤함 속에 던져질 그들의 미래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사회가 해내지 못하고 있는 일을 이역만리의 낯선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햇빛 가득한 정원에서 다정한 커피를 나누면서도 나는 내내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부를 만들어야 하는 세월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키우기에 앞 서 물건을 만들어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각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들 남매가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잘 자라리라고 믿습니다. 그 러나 '잘 자란다'는 것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 다.
우리는 아직도 '잘 자란다'는 의미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없습니다. 경쟁과 효율성 등 사람을 해치고 사람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일의 엄청난 잘못을 미처 돌이켜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는 일찍부터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언제나 후회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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