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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붉은 장미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들어 갈 때보다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 비극의 현장을 돌아보는 모든 방문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침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분노와 경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허탈에 가까운 표정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양심에 대한 최후의 신뢰가 무너진 허탈함이었습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만행이라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에 대한 분노나 충격을 넘어선,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좌절이라고 해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비극의 잔해들은 차마 눈길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인모(人毛)로 짠 모직물에 이르러서는 전신에 소름끼치는 전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전쟁이라는 집단적 광기를 핑계삼는다 하더라도 살인 공장을 건설하여 수백만 인명을 살해하였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그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는 죄악 입니다.

 

나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나오다 아름다운 장미꽃 화단을 만났습니다. 나는 이 저주받은 땅에 피어 있는 장미꽃이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그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절망을 작은 꽃나무가 달래주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에게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를 전하기보다 차라리 장미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장미꽃 화단은 유난히 붉은 꽃송이로 이 비극의 땅을 따뜻이 데워주고 있었습니다.
장미꽃 화단을 발견하기 직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가스실입니다. 비용이 적게 들 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살인 방법을 연구하여 건설한 것이 이 가스실입니다. 지클론(Zyklon)B 는 5kg으로 1천명을 죽일 수 있는 독가스입니다. 이 독가스가 2년 동안 10,000kg이 소모되었다고 합니다. 가공할 대량 살인 공장입니다.
지금은 물론 텅 빈 콘크리트 공간으로 남아 있지만 이 음울한 공간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나의 눈앞에는 당시의 광경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마치 나의 머리 위에서 독가스가 쏟아져내리는 듯한 착각으로 온몸의 힘이 빠져나갑니다.
나는 쓰러질 듯한 현기증을 가까스로 견디면서 서둘러 햇빛이 비치는 지상으로 올라왔습니 다. 가스실 옆 작은 공터에는 교수대가 서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창설하고 1940 년부터 1943년까지 가장 오랫동안 수용소 소장을 지냈던 루돌프 회스(Rudolf Ho"ss)를 처형했던 교수대입니다. 로프를 걸었던 쇠갈고리만 교수대의 상단에 꽂혀 있습니다. 가스실의 굴뚝과 나란히 보이는 쇠갈고리는 거꾸로 매달린 물음표(?) 모양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습니다.

 

가스실과 교수대를 돌아나오는 나를 맞아준 것이 바로 장미꽃 화단이었습니다. 별로 크지 않은 화단입니다. 긴 화단을 가득히 덮고 있는 장미꽃은 이 참혹한 현장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 같기도 하고 이곳에서 숨져간 300만의 영혼 같기도 합니다.
나는 장미꽃 화단 옆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이 비극의 현장은 이처럼 먼 폴란드 땅에다 둘 것이 아니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라인 강의 기적과 나란히 놓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쟁 범죄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엄숙할 정도로 철저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웃 일본의 ‘유감(遺憾)'과 같은 형식적 외교 언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가 이곳에서 통곡하였고 지금도 유대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찾아오는 사람이 독일인입니다. 독일 학생들에게는 수학 여행의 필수 코스입니다. 그러나 폴란드 오지에 있는 아우슈비츠는 아무래도 세상에서 너무 먼 것 같습니다. 당사자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아우슈비츠는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입니다. 굳이 베를린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이 세계의 어느 곳이든 기적과 번영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전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유슈비츠는 단지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찬미하는 모든 '번영의 피라미드'에 바쳐진 잔혹한 희생의 흔적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내면보다는 외형의 화려함이 우리의 시선을 독점하고 있는 오늘의 풍토에서는 전도된 가치가 얼마나 끔찍한 희생을 동반하는가를 묵상하는 제단(祭壇)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2수용소에는 지금도 철길이 그 속으로 벋어 있습니다. 이 길게 벋은 철길에 서면 당신은 유럽 각지에서 유대 인들을 가득히 실은 열차가 들어오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굶주린 처자식들과 함께 짐짝처럼 화물 열차에 실려와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이 죽음의 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가재도구와 가방을 챙겨들고 열차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아유슈비츠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그 가방의 임자이며 냄비와 숟갈의 임자들입니다.
당신은 아마 이 지옥의 입구와 같은 현장의 몸서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쉰들러는 바로 이곳에 내리는 수많은 유대 인들의 목숨을 구해낸 독일인이었으며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쉰들러 리스트>입니다. 이 영화는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나치즘의 광기에서 피어난 한 송이 장미꽃의 이야기이며 절망의 땅에서 건져올리는 양심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아우슈비츠를 떠나 곧장 크라쿠프에 있는 쉰들러의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쉰들러의 공장을 찾아봄으로써 아우슈비츠에서 받은 충격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 현장이기도 했던 이 공장은 지금은 텔포드(Telpod) 전자부품 공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창문 틀과 복도는 영화 촬영을 위하여 회색으로 바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한동안 망설이다 덧붙입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카지나예슈 보야스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점령군 사령관으로부터 범낭 냄비 생산 공장인 레코르드(Rekord)를 불하받은 쉰들러가 이 공장에 유대 인들을 고용함으로써 유대 인 수천 명을 아우슈비츠에서 구해낸 것은 사실이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용해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는 그의 '장사'였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또 한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유대 인이었던 스필버그 감독이 쉰들러의 정체를 몰랏을 리 없으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극화한 이유가 무었이었을까.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더욱 처절하게 조명하기 위한 극적 구성일 수도 있으며, 최후의 위로를 남겨두려는 그의 고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듣는 쉰들러의 '상혼(商魂)'은 다시 한 번 우리를 좌절하게 합니다. 진실이 아닌 위로는 결국 또 하나의 절망을 안겨줄 뿐입니다.

 

나는 '죽음의 문'안으로 길게 뻗어 있는 철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길은 이제 잡초만 간간이 자라고 있는 녹슨 가찻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에는 과연 '죽음의 열차'는 없는지. 자기 민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하여 질주하고 있는 '번영의 열차'는 없는지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문득 누군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철길의 종착역은 어디에 있는지,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이어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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