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삶을 가슴으로 상대하는 정직한 정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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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에서 리버풀까지
노래는 삶을 가슴으로 상대하는 정직한 정서입니다
영국 중서부 지방의 농촌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크고 작은 목장들마다 푸른 초원이 있고, 초원에는 소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소보다 훨씬 축복받은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격동의 역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양이 사람을 몰아낸 종획운동(Enclosure movement)이라는 이름의 비참했던 농민소탕의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쟁처럼 휩쓸고 간 일대 격변이었습니다. 농토는 하루아침에 목장으로 변하고 수백 년을 그 땅에서 살아온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맨체스터, 리버풀, 리즈, 요크 같은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농민의 대이동(Rural Exodus)이었으며 산업혁명의 시작 이었습니다.

 

혁명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남용되고 있지만 아마 17-18세기의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산업혁명만큼 급속하고 엄청난 변화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산업혁명은 기계와 동력을 발명하고 생산방법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명실상부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를 오늘날의 산업 사회로 바꿔놓았습니다. 지금은 다시 산업 사회 이후의 정보 사회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지만, 정보 사회란 아직은 산업 사회의 뼈대 위에 올려지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담론인지도 모릅니다.
산업혁명의 본고장이던 이곳 영국중서부의 소위 '산업혁명 벨트'는 이미 그 역사를 다하고 과거의 고장으로 변해 있습니다. 너무 늦은 방문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샐퍼드, 셰필드, 그리고 리버풀 항구 등 내가 찾아간 곳에서는 과거의 활기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맨체스터에서 숙소로 들었던 브리타니아 호텔도 아주 오래 된 건물이었습니다. 160년 전 이 지역이 산업의 중심지였던 시절에 어느 거상(巨商)의 사저였습니다. 중후하고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과거의 영광과 번영을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텔에서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양로원의 노인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새삼스러운 것은 과거의 번영은 그림자가 클수록 현재를 더욱 어둡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맨체스터는 고도(古都)였습니다.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던 그 엄청난 에너지와 활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인구 260만 명과 대학, 오케스트라, 박물관을 갖추고 있으며 국제적 금융산업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이끌던 폭발력은 사라지고 흡사 박물관 뜰에 놓인 대포처럼 도시의 거리에는 지난 세월로 가득하였습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이 지역의 모습은 과연 역사는 느리기는 하지만 지나고 보면 굉장한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합니다.

 

당시 방직 공장이 있던 앤코트 거리도 스산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1800년대 초반 방직업의 세계적 중심이었던 이곳은 40년 전에 이미 최후의 한사람까지 떠나버린 폐허였습니다. 폐가처럼 을씨년스런 빌딩을 돌아보고 있자니 그 낡은 빌딩의 한 귀퉁이를 빌어 디자인 회사를 하고 있다는 흑인 사무원이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 지역이 방직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원면(原綿)을 배로 실어오던 강과 노동자들의 주거지가 있던 외곽 지역을 친절히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공장들은 모두 “인도로, 홍콩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자동차 문을 열어두지 말라는 그의 충고를 듣고 자동차로 돌아가 문을 닫으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할렘을 연상시키는 거리와 녹슨 빗장이 채워진 건물 주위에는 군데군데 젊은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당시 세계의 부(富)를 반 이상이나 실어날랐던 리버풀의 풍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항구 역시 폐항처럼 스산하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항구와 도심에 건재하고 있는 육중한 건물들이 전성 시대의 번영을 짐작케 합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빌딩들이 육중하고 클수록 오히려 더 짙은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위스키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당시 최대의 무역상이던 조니 워커의 무역 센터는 이제 워커 갤러리가 되어 있었으며, 선창가에는 200여 년 전 전설적인 선장 제임스 쿡과 함께 대양을 누비던 인데버(Endeaver) 호의 앙상한 돛대만 빈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리버풀이 비틀스의 고향임을 상기시키며 비틀스의 이야기를 띄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틀스의 노래는 산업 노동의 리듬이라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비틀스 팬은 아니지만 나 역시 비틀스가 동시대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 위로 상륙할 수 있었던 그들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던 생명력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틀스는 분명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보다도 더 강렬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비틀스가 최초로 노래를 불렀던 '캐번 클럽'을 둘러보고 비틀스의 일생을 재현해놓은 '비틀스 스토리'를 찾아갔습니다. 캐번 클럽은 아직 개장 시간이 아니어서 문은 닫혀 있었지만 비틀스 스토리에는 비틀스를 잊지 않은 젊은이들이 좁은 지하 공간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상 속의 비틀스를 바라보면서 그 앞을 지나가는 관객일 뿐이었습니다. 함께 열광하던 과거의 청중은 아니었습니다.
영상 속에서 외치고 있는 비틀스도 내게는 매우 놀라운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열광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물결은 마치 혁명의 현장을 연상케 할 정도였습니다. 네 명의 젊은 비틀스는 분명 동시대의 같은 젊은이들이 스스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던 것을 일깨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비틀스 자신들도 미처 깨닫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비틀스를 보내고 난 지금까지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는 모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비틀스가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결별로 설명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결별은 비틀스를 둘러싸고 있는 두개의 강압, 즉 상업성과 정치성이라는 외압이 비틀스 그룹 속으로 내화(內化)한 것이며 결국 비틀스는 이 두 외압의 합작으로 종언을 고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와 외압 이전에 비틀스의 자양이 되었던 생산 현장이 황무지처럼 메말라 있다는 사실을 먼저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손잡고(Hold hand) 노래할 청중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더 결정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리버풀이 산업혁명의 고장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비틀스는 이 고장의 동력이었던 노동 계급의 아들이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산업혁명기의 최대 항구였던 리버풀에서 뒤늦게 만난 비틀스는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좁은 지하 공간의 영상 속에서 외치고 있는 비틀스는 이제 과거의 이야기, 좌절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렛잇비(Let it be)'를 비틀스 스스로가 '만들어 내자'는 창조의 의미로 노래했는지, 아니면 청중들이 그것을 '내버려두라'는 방관의 의미로 읽었는지 나로서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나는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공감하는 정서 그 자체가 철저하게 변질되어버린 오늘의 현실이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는 현실의 존재성 자체에 대해서마저도 생각하기를 포기한 노래와 청중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의 고장이자 비틀스의 고향인 리버풀. 지금은 산업혁명 당시의 열기도 가시고 노래도 사라져버린 스산한 풍경을 거닐면 비틀스는 추억이 되어 나타납니다. 비틀스의 추억은 우리에게 ‘노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노래가 아니라 생활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삶[생산]과 노래[정서]는 어떻게 만나야 되는가를 생각 하게 합니다.
노래는 역시 노래라는 당신의 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비록 노래가 아무리 노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정서의 공감을 전제로 하는 한 노래는 저마다의 삶을 가슴으로 상대하는 정직함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현실의 존재성과 정면에서 맞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파도를 헤쳐나가는 방법은 가슴으로 파도를 계속 넘는 방법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도달하는 대안(對岸)이 대안(代案)입니다. 대안이 없는 노래가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맨체스터에서 리버풀까지 오는 동안 나는 삶과 노래가 사라진 이 고도(古都)는 결코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는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를 읽어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나라의 생산력은 과연 얼마만한 크기이어야 하며, 한 도시의 부(富)는 얼마만한 크기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공룡이 사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몸집의 크기에 관한 연구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삶과 어떠한 노래가 만나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삶과 노래가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삶과 노래의 생리학에 관한 연구와도 같은 것입니다.
리버풀을 떠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비틀스가 사라진 이유(Why she had to go)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띄웠던 그들의 꿈(Above us only sky)을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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