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대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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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문명은 대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숲입니다
안데스 산맥의 눈덮힌 연봉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장엄합니다. 안데스산맥의 일출은 캄캄한 암흑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평의 긴 주홍띠를 그으면서 시작됩니다. 가늘고 긴 주홍색 띠 한가운데가 서서히 부풀다가 어느 순간에 문득 태양이 되어 솟아오릅니다. 곧이어 황금빛 운해(雲海)가 드러나고, 설봉(雪峰)이 드러나고, 검은 하늘이 검푸른 하늘로 변하면서 동이 틉니다. 하루의 아침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열고 땅을 열어 놓는 장엄함입니다. 안데스 산맥의 일출을 보면 일찍이 이 산맥에서 거대한 태양의 제국을 건설하였던 잉카의 사람들을 납득하게 됩니다. 그들은 태양의 장엄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위의 모든 생명을 길러주고, 바다의 물을 높은 산위에까지 올려주고, 산봉우리의 눈을 녹 여 물을 내려주는 것이 바로 태양이라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잉카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하면 문명의 진보는 태양을 잊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양의 에너지로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수력, 화력에너지를 비롯하여 우리들이 섭취하는 모든 음식물의 칼로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태양에너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늘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Cuzco)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쿠스코는 해발 3,400m 고원에 건설된 잉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쿠스코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그리고 칠레 북부에 이르는 광활한 제국의 중심으로서 당시 800만의 인구를 안고 있었습니다.
1533년 피사로가 페루 북부의 카하마르카에서 잉카의 왕인 아타와르파를 사로잡아 몸값으로 방 한개를 가득 채우는 금을 뺏어낸 다음 그를 처형합니다. 그리고 이곳 쿠스코로 진격하여 금이 아닌 것은 남김없이 파괴합니다. 태양을 섬기며 태양의 아들 '비라코차'를 기다리던 잉카의 사람들은 역사의 어둠속으로 그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24,000km의 도로와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로(水路)를 건설하여 험준한 안데스 산맥에 일구어낸 잉카문명의 터전은 폐허로 변합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남아 있는 것은 말없는 잉카의 돌뿐이었습니다. 수십톤에 달하는 육중한 돌을 다루었던 그들의 솜씨는 지금도 경탄의 대상입니다. 레이저 광선이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절단하여 쌓은 석축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잉카를 밟고 들어선 콜로니얼 건물들의 발밑에서 말없이 서로를 껴안고 있습니다.

 

잉카최후의 왕 투팍 아마루가 처형된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서 잉카의 최후를 생각합니다. 잉카 제국의 심장이던 이곳에는 이제 대성당이 새로운 위용을 과시하며 서 있고, 그 옆으로 태양의 신전 쿠리칸차가 있던 곳에는 산토도밍고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태양의 신전을 가득히 채웠던 금으로 만든 신상(神像)과 집기들은 남김없이 녹여 금 막대기로 만들어 스페인으로 실어갔습니다.
나는 아르마스 광장으로부터 사크사이와만 요새를 찾아갔습니다. 살육과 파괴에 견딜 수 없었던 망코 잉카가 병사 20,000명과 함께 잉카의 부활을 위하여 싸웠던 요새입니다. 무너 진 성벽위로 무심한 관광객들만 거닐고 있었습니다. 고원의 산소부족으로 말하기조차 힘들 어 하며 느릿느릿 걷고 있는 그들의 걸음걸이는 마치 비극의 무대를 걷고 있는 배우들을 보는듯 하였습니다.
나는 사크사이와만 요새에서 우루밤바 강을 따라 망코 잉카가 최후의 저항을 하였던 올란타이탐보를 찾아갔습니다. 생각하면 나는 쫓겨가던 잉카 병사들의 퇴로를 뒤쫓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매번 만나는 것은 폐허뿐입니다.
울란타이탐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잔뜩 흐린 하늘아래 비바람마저 흩뿌리는 폐허에는 침략자들의 접근을 감시하던 전망대와 군량미를 비축했던 창고가 아득히 높은 산허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패배한 잉카 병사들은 더 깊은 오지인 비르카밤바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르카밤바가 어디인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안데스 고원에 남아 있는 잉카문명의 자취와 그 멸망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동안 줄곧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는 '파괴'였습니다. 철저한 파괴였습니다. 황금이외의 모든 것은 철 저히 파괴해온 탐욕의 자취였습니다. 황금마저도 녹여서 막대기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것 역시 파괴당하였다고 해야 합니다. 잉카 사람들이 처음보는 동물인 말을 탄 피사로일행은 신비스런 존재였습니다. 잉카사람들이 피사로일행을 그들이 기다리던 전설의 비라코차로 오인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피사로는 이러한 잉카의 전설을 재빨리 간파하고 스스로 전설속의 비라코차로 행세하면서 정복해가기도 하였습니다.
잉카의 전설속에 남아 있는 비라코차는 결코 정복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다로부터 와서 잉카의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결코 힘을 사용하는 법이 없었고 꾸준히 모범을 보인 자상한 '교사'였습니다. 피사로일행이 비라코차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잉카문명은 태양의 문명이었고, 이 태양에 대한 믿음이 파괴당함으로써 잉카 문명은 종언을 고합니다. 그러나 정복자들에게 태양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잉카 문명은 살아 있는 사람을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피의 제전이었으며, 심지어는 처녀와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의 비인간적인 문화였습니다. 그것이 파괴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는 오늘날에도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잉카문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후안 세리타(Juan Serita)의 주장은 그와 달랐습니다. 산사람이나 어린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없지 않지만 그러한 의식은 극히 드물었고 특별한 경우에 한하였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산양인 라마로 희생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인신공양은 스페인의 정복정책이 왜곡하고 과장한 악의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잉카문명에 대한 후안 세리타의 논리적인 설명을 신뢰합니다. 더구나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느꼈던 그의 성실성과 정직성을 신뢰합니다.
설령 피의 제전이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인신 공양을 산양으로 바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파괴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괴 그 자체가 훨씬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큰 악이 흔히 패배한 작은 악을 제물로 삼고 있는 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타국의 인권 문제에 관여하는 방식이 전쟁수단을 동원하는 경우마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쟁 수단이 평화와 휴머니즘으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파괴의 양이 아니라 그것이 파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파괴,그리고 잔혹함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잔혹함에 대하여는 다른 이름으로 이를 단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입니다. 문명은 그것이 아무리 조야한 것이라도 부단히 계승되고 축적됨으로써 인류의 지혜가 되어왔다는 문명사의 교훈이 그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문명을 다른 문명으로 대체하는 것 역시 본질에 있어서는 파괴라고 해야 합니다. 대체는 단절이며, 단절은 파괴와 동일합니다. 더구나 문명은 대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숲입니다. 한 그루 나무도 옮겨심기가 쉽지 않은 법입니다. 하물며 거대한 숲이야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20세기는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향해 자기를 배우라고 강요해 온 세기라 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장자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불구자가 밤증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비추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자기를 닮 았을까 두려워서였다.'( 之人 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其似己也)

 

나는 이 구절이 함의하고 있는 자기성찰의 엄정함에 숙연해집니다. 자기를 닮으라는 요구는 오만이거나 탐욕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복제에 대하여는 강한 반론을 제기하면서도 문명복제에 대하여는 너무나 무심한 세기를 우리는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데스 산맥의 일출과 안데스 고원의 석양에 남아 있는 잉카의 유적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 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역사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단절과 함몰의 거대한 공동(空洞)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합니다. 피사로가 잉카의 문명으로부터 황금만을 계승하고 있듯이 우리는 지금도 황금만을 계승하려고 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과연 우리들에게는 피사로를 타매할 자격이 있는지 우리들 스스로를 반성하게 합니다.

 

나는 페루의 수도 리마를 걸으며 콜로니얼풍의 도시 이곳 저곳에 남아 있는 잉카 유적을 만날 때마다 이곳에 남아 있는 무심한 유적이 과연 어떤 의미로 읽히는지 궁금해집니다.
유적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투팍 아 마루 해방군(MRTA)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사살된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 건물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사관 건물은 물론이고 그 앞을 지나는 자동차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뜨거운 삶의 현장이 역사의 저편으로 건너가 유적(遺跡)의 시간대로 편입되는 것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허망함이 또 하나의 공동으로 가슴속에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페루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잉카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일본대사관의 총성이 메아리로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마의 심장인 아르마스광장에는 지금도 피사로의 시신이 안치된 대성당이 그 엄숙한 위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건너편의 대통령 궁 옆에는 피사로의 기마상이 힘찬 도약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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