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카의 그림은 겹겹의 포장에 감추어져 있는 현대 문명의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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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나스카의 시간 여행
나스카의 그림은 겹겹의 포장에 감추어져 있는 현대 문명의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해안을 끼고 달리는 길은 생각과는 달리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삭막한 길입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이 하얗게 뻗어 있는 500km의 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나는 이 세상의 공간이 아닌 4차원의 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듭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에 걸쳐 있는 긴 시간의 띠 위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길 끝에 신기루와 같은 나스카가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나스카에 이르는 나의 여정은 이처럼 공간여행이 완벽하게 배제된 환상의 시간 여행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스카는 당신도 알고 있듯이 수수께끼의 지상 그림이 그려진 넓은 사막입니다.

 

일몰 즈음 나스카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있는 단발 프로펠러를 단 세스나 기를 타고 사막 위를 날았습니다. 멀리 낮은 산등성이에 걸린 저녁 해가 비스듬히 던지는 긴 그림자는 황량한 사막을 더욱 아득하게 만들었습니다.
검회색의 넓은 사막위에는 고래, 원숭이, 거미, 콘도르, 개, 나무, 우주인, 펠리컨 등의 그림 과 직선, 삼각형, 사다리꼴과 같은 수많은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 한 개의 크기 가 100~300m에 달하는 거대한 것들입니다. 심지어는 7~8km의 직선이 마치 긴 활주로처럼 뻗어 있기도 합니다. 1930년대에 리마와 아레키파 간의 정기 항공 노선이 개설되어 이 사막 위를 비행하게 될 때까지 이곳에 이러한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아무 도 몰랐을 정도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입니다.

 

320km²에 달하는 광막한 평원에는 그림 제작을 지휘하거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도 없습니다. 하늘 위를 날지 않고서 어떻게 이처럼 크고 정교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언제, 누가, 왜, 이러한 곳에 이러한 그림을 그렸을까. 나스카의 그림은 그것을 설명 하는 사람들이 더해갈수록 더욱 더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될 뿐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은 지구상에서 이러한 그림을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캔버스라는 사 실입니다. 이 넓은 평원은 우선 비가 오지 않는 대지입니다. 10년에 한 번, 그것도 안개비가 30분 정도 내릴 뿐입니다. 그리고 바람도 자지러지는 곳입니다. 태양열을 흡수한 지상의 작은 돌들이 발산하는 복사열 때문에 바람의 기세가 꺾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지워질 염려가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보통의 사막과 달리 작은 검회색 돌이 땅을 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을 그린 방법도 특이합니다. 검회색의 작은 돌들을 들어내고 돌 밑의 황토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측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흙에는 석고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작은 돌들을 땅에 고착시키고 있으며 매일 아침 자욱히 괴는 안개는 이 고착 효과를 더욱 높여줍니다. 실로 세상에서 이곳만큼 그림을 영원히 보존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것까지 고려해 이곳에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생각하면 더욱 망연해질 뿐입니다.

 

우주인의 활주로라느니, 오리온 별자리라느니, 암호문자라느니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생각의 틀 안으로 이 그림을 들여와서 그것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들은 우리의 그릇 에는 감히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것을 만드는 데에는 반드시 필요와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의 이유를 발견해내지 못함으로써 벽 에 부딪치고 망연해집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하필 이곳에다 화산 활동으로 생긴 검은 돌들을 수천 톤씩이나 들어내면서 이러한 그림을 그렸을까.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 앞에서 느끼는 망연함이 내게는 매우 역설적인 희열로 다가옵니다. 내가 내놓은 수수께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틀린 답을 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즐거움 같은 것입니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간 어른들이 실패를 연발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나는 그레이엄 헨콕이 주장하는 ‘사라진 문명(The Evidence of Earth's Lost Civilization)’이 생각났습니다. 지구상에는 과거에 이미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그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피리 레이스의 남극 지도입니다. 15,000년 전부터 내륙에 얼음이 쌓이기 시작해 BC 4000년경에는 모든 해안이 1.6km 두께의 두꺼운 빙하 밑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피리 레이스는 1513년에 남극 대륙의 정확한 지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949년 영국-스웨덴 과학조사단이 지진파 측정에 의하여 처음으로 밝혀낸 이 지역의 지형은 피리 레이스의 지도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피리 레이스가 베낀 원본 지도는 콘스탄티노플 제국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적어도 5,000년 전에 그려진 지도였음을 헨콕은 입증하고 있습니다.
헨콕은 피리 레이스 지도뿐만 아니라 적어도 BC 13,000년에 그려진 원본 지도를 베낀 필립 보아슈의 지도도 사라진 문명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삼각좌표변환법, 삼각좌표법 등 고도의 수학과 지도 작성법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릴 수 없는 고대의 지도입니다. 인류사에는 사라진 고도의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나는 광막한 나스카의 사막 위를 날고 있는 동안 문명이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습니다. 나스카 그림의 이유가 궁금하듯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스카 사람들은 아마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그림을 그렸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윤이 보장되어야 생산을 하고 생산 과정은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게는 우리의 문명과는 다른 고도의 문명이 이 지구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한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나스카의 신기루와 같은 시간 여행이 안겨준 환상을 매우 귀중하게 간직하려 합니다. 그것은 겹겹의 포장에 감추어져 있는 현대 문명의 '이유'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나스카 그림을 읽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스카 지상 그림에 대한 독법(讀法)은 문명에 대한 새로운 독법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스카의 그림은 분명 우리들에게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우리들을 돌이켜보게 하는 영원한 메시지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은 나스카를 읽고 있는 방법이 참으로 가련합니다. 나스카를 돌아나오는 길에서 당신은 야산 기슭에 새겨놓은 글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스카 지상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본떠 새겨놓은 글들은 대부분 상품 광고거나 선거 포스터거나 이곳을 방문한 누군가의 이름입니다. 나스카를 읽는 방법이 아직은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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