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장성보다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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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에 올라
사람이 장성보다 낫습니다
오늘은 만리장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베이징 공항에 내리자마자 작정했던 대로 곧장 만리장성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을 뿐 아니라 만리장성이 가장 운치 있게 보인다는 팔달령(八達嶺)을 마다하고 그나마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마대(司馬臺) 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팔달령에서 바라보는 만리장성은 이미 사진첩에서 낯이 익었기도 했지만 굳이 그곳을 사양한 까닭은 관광 명소로 개축된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만리장성을 당시의 심정으로 대면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사마대에는 관광객이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더욱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려 산야를 하얗게 덮어놓고 있었습니다. 산야를 덮고 있는 흰 눈은 장성을 더 먼 과거로 물려놓은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곳 사마대에 도착하여 장성을 바라보고 또 장성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장성을 당시의 의미로 읽는다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다가는 사실이었습니다. 자동차의 속도와 비행기의 높이에 익숙해진 우리들로서는 우선 우리의 속도 감각이나 공간 정서가 당시로 되돌아갈수 없을 정도도 엄청나게 변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전쟁의 방법이 판이하게 달라진 오늘날에는 장성을 쌓고 국경의 근심을 덜었던 당시 사람들의 안도감을 실감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하물며 이 장성 앞에서 말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북방 민족의 막막한 체념이야 말할 나위로 없습니다.

 

만리장성을 비록 당시의 의미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세참 바람이 적설(積雪)을 헤치고 있는 성벽에 앉아서 애써 과거의 정서를 길어올리고 있습니다. 첩첩연봉(疊疊連峰) 위를 굽이굽이 돌고 돌아 아스라이 하늘로 뻗어간 장성을 따라 시선을 달려봅니다. 아득한 과거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인류사의 유장한 흐름을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만 리에 달하는 장성은 역시 장대한 축조물이었습니다. 장성을 찾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새들도 넘기 힘든 이 험준한 산맥의 능선 위에 다시 만 리가 넘는 성벽을 쌓아올린 그 엄청난 역사(役事)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많은 벽돌 한 장 한 장이 담고 있는 사람들의 노역(奴役)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그 속에 담고 있는 무수한 희생으로 하여 우리들이 수천 년 동안 골몰해왔던 역사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강대한 제국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부리며 매진해온 부국강병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장성은 산맥을 타고 흘러오는 역사의 장강(長江) 같습니다. 만리장성은 제왕의 힘과 천하통일의 웅지를 보여주는 고대 제국의 압권입니다. 그리고 천하통일은 또 막강한 통치력의 증거이며 동시에 문화의 높이를 보여주는 척도라 일컬어집니다. 유럽이 알프스 산맥 서쪽 땅에서 한 번도 통일 제국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시종 분립(分立)의 역사를 반복하여 왔음에 비하여, 광대한 중국 대륙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어낸 만리장성은 동양적 통합력과 원융성(圓融性)의 실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만리장성은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폐쇄의 성(成)이며 동시에 중화사상(中華思想)이 내장하고 있는 독선의 징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답적 준론은 스산한 폐허에 앉아 있는 나의 심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념보다는 바로 손발이 닿아 있는 벽돌의 즉물성에 마음이 이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에 맺혀 있는 무고한 사람들의 고한(膏汗)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푸른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틈도 없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잎이 다 진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이 어미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등성이에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밤이나 낮이나 고역에 시달리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陟彼岵兮 瞻望父兮 父曰 噡子子 行後夙夜無己 上慎旃哉 揂來無上
陟彼岵兮 瞻望母兮 母曰 噡子李 行後夙夜無寐 上慎旃哉 揂來無棄
陟彼岵兮 瞻望兄兮 兄曰 噡子弟 行後夙夜必楷 上慎旃哉 猶來無死)

 

《시경(詩經)》척호장(陟岵章)의 정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마치 나 자신이 높은 산에 올라 고향을 그리는 당사자인 듯 처연한 마음이 됩니다. 만리장성의 축조뿐만 아니라 성곽, 궁궐 등 끊임없는 토목 공사와 전쟁으로 뿔뿔이 찢어져야 했던 이산(離散)의 아픔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장성을 타고 강물처럼 가슴 속으로 흘러듭니다. 장성의 벽돌 위에 앉아 있는 심정이 예사로울 수가 없습니다. 문득 만리장성에 바치는 모든 경탄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거대한 것에 바치는 경탄의 소리가 무심하기 짝이 없는 횡포처럼 느껴집니다.

 

만리장성을 내려오면서 나는 줄곧 만리장성이 갖는 최소한의 의미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 성벽에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한갓 도로(徒勞)에 그친다는 것이 너무나 허전했기 때 문이었습니다. 이 성벽 축조에 희생된 사람은 물론이며 그 숱한 사람들의 아픔에 울적해하는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만리장성은 최소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어이 찾아낸 것이 만리장성은 공격을 위한 거점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성벽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공격을 위한 거점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보루(堡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이 방어벽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저상(沮喪)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한 가닥 위로였습니다.
세계의 이곳 저곳을 주마(走馬)하는 동안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와 신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그 밑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과 노역을 외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막상 만리장성에 올라 이것이 공격의 기지(基地)가 아니라 방어의 보루(堡壘)라는 깨달음은 무척이나 귀중한 발견같이 느껴졌습니다.
비단 이번 중국에서 만난 만리장성과 자금성(紫禁城)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성채와 신전 역시 방어의 축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축조물이 과시하는 거대한 규모는 침략자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예방 전쟁의 역할을 수행해왔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것에 배어 있는 애끊는 별리의 아픔과 참혹한 희생에 마음아프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용으로 우뚝 서서 미연에 침략을 단념케 하였다면 참으로 다행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 되고 지혜의 표상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러한 대규모 축조 공사는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공사였으며 전쟁과 같은 희생을 치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역은 분명 전쟁 그 자체보다는 나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쌓고 있는 전쟁무기들과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습 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만리장성을 되돌아보는 나의 마음은 아무래도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만리장성의 대역사를 예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의 무모함을 타매(唾罵)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을 예찬할 수 없는 까닭은 장성의 축조는 어김없이 민초들의 곤궁과 분노로 이어지고 천하를 다시 대란으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 무모함을 타매할 수 없는 까닭은 잔혹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장성을 쌓아 전쟁을 막으려 했던 일말의 고충(苦衷)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공격용과 방어용의 구분이 애매해진 무기들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 쌓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보다는 분명히 지혜롭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당태종(唐太宗)은 북방 흉노족들과 화친(和親)을 성공적으로 맺고 돌아온 이세적(李世勣)장군에게 '인현장성(人賢長成)'이라는 네 글자를 써주었습니다.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장성으로서도 얻을 수 없었던 국경의 화평을 필마단신(匹馬單身)으로 이루어 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어보다는 화평이 낫고, 장성보다 사람이 나은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날도 엄청난 공세가 거침없이 밀어닥치기는 만리장성 당시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 논리를 앞세우고 더욱 거세게 쇄도하는 외풍과 외압이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울타리마저 스스로 헐어야 하는 난감한 현실입니다.
이처럼 난감한 현실은 만리장성의 장대한 모습을 무척이나 부럽게 합니다. 작은 성 하나 쌓지도 않은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집의 작은 담장을 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는 성이 없고 나라를 방어할 성벽이 없다면 제집의 담장인들 온전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겨울 바람이 고송노석(古松老石)에 부딪쳐 휘파람이 되는 산상에서 생각은 하염없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화평을 만들어내고 사람을 키워내는 진정한 성을 쌓을 수는 없는가. 도도한 욕망의 거품으로부터 진솔한 인간적 가치를 지켜주는 보루(堡壘)를 쌓을 수는 없는가. 그리고 이러한 보루(堡壘)들을 연결하여 20세기를 관류해온 쟁투의 역사를 그 앞에 멈추어 서게 할 새로운 세기의 성벽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만리장성은 이 모든 생각을 싣고 강물처럼 가슴속으로 흘러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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