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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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 계곡의 십자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약 40km 거리에 있는 로스 카이도스 계곡(전사자 계곡)에는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기념물로 일컬어지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높이 150m의 십자가가 해발 200m의 바위산 정상에 서 있습니다. 이 바위산을 뚫어 다시 세계 최대의 성당을 만들었습니다. 이 성당의 제단은 바로 십자가의 바로 아래에 자리잡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제단 앞에는 프랑코와 팔랑헤당의 창건자인 안토니오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매일 정오에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스페인 내전에 희생된 100만의 주검을 위로하는 미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성가는 바위산을 울리고 다시 십자가를 타고올라 스페인의 하늘로 울려퍼질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한 자락으로 휘감고 흐르는 성가의 물결 속에 앉아서 나는 마치 20세기의 무게를 몸소 짊어져 보는 감회를 금치 못합니다.

 

1936년 프랑코의 군사반란으로 시작된 3년간의 스페인 내전은 20세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협을 불허하는 선과 악의 직선적 대결, 이상에 대한 정열, 행동에 대한 도취 등 스페인 특유의 열정과 함께 질풍처럼 달려간 비극이었습니다.
인구 2,100만 명 중에서 100만 명이 전쟁 중에 죽었고, 내전이 끝난 후에 25만이 투옥되었으며 40만 명이 외국으로 망명하였고, 다시 40만 명이 ‘산보(paseo)’라는 이름의 테러와 처형으로 살해되었습니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대가 직접 개입하고, 이어 옛 소련이 공화정부를 지원함으로써 스페인 내전은 내전의 성격을 넘어 이른바 ‘국제적 내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고 대리전이었습니다. 영화 <땅과 자유(Land and Freedom)>에서 고발하고 있듯이 인민전선 내부의 이념적 갈등과 참상까지 골고루 갖춘 스페인 내전은 20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모순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내전의 흔적은 적어도 겉으로는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마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톨레도일 것입니다.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는 일찍이 스페인을 점령한 로마군이 요새로 삼았던 도시입니다. 3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형은 한눈에 전략 거점임이 드러나는 전형적인 요충지입니다. 내전 당시에는 스페인 군대의 심장부였던 육군보병학교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톨레도는 그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반란군이 이곳을 신속하게 점령하여 군사적 거점으로 삼았고 당연히 스페인 내전의 최대 격전지가 된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 톨레도 군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사적은 프랑코 반란군에 가담하여 55일간 이곳을 사수했던 모스카르도 대령의 영웅적 전투를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전시장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말미암아 심하게 파괴된 건물의 모형과 사진들로 채워져 있으며, 지휘 본부에는 모스카르도의 천연색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주의회(州議會)에 인질로 잡혀 있던 그의 아들과 나눈 최후의 통화 내용도 재생해놓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역조명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내전 당시 세계의 격분을 불러일으킨 게르니카의 처참했던 피폭 현장이 완벽하게 청소되고 지금은 단지 소피아 미술관에 피카소의 그림만으로 남아 있는 것과는 현격하게 대조적이었습니다. 반란을 승리로 이끌고 30년간의 독재를 이끈 프랑코가 죽음에 앞서 남긴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적을 용서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내겐 적이 없다. 모두 사살되었다”는 답변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당시 곤경에 빠진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40,000여 명의 의용병이 세계 도처에서 스페인으로 달려와 싸웠던 이야기는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감동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아득히 십자가를 올려다보고 그 십자가 밑에서 울려퍼지는 성가와 기도를 들으며, 이 거대한 십자가와 성당이 투옥된 정치범들의 강제 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건립의 주체가 가해자라는 사실, 그리고 그 노역의 담당자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이 성당의 기도와 십자가가 과연 좌우파를 막론하고 내전으로 죽어간 모든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평화이고 기도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이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를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소설의 제목을 따온 존 던의 시와 그 시가 만들어진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늦은 밤 서재에 앉아있던 시인이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는 사동을 불러 누가 죽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다시 그를 불러 누가 죽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없음을 알리고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시였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그의 시는 한 줌의 흙이 파도에 씻겨가면 그만큼 대륙의 상실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 조종소리는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한 종소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종소리임을 감동적인 시어로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모두가 희생자이며 결국은 우리 세기의 비극임에 틀림없습니다. 구태여 누구룰 위한 십자가이며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를 물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를 묻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고 이러한 용서에 의해 비로소 역사가 진보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반복은 진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우리들이 그러한 종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어느덧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세기는 실로 내전(internal war)과 내란(civil war)의 세기라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중국·인도차이나·그리스·멕시코·콜롬비아·칠레·콩고·나이지리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념투쟁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형태만 바뀌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더구나 예외가 아닙니다. 이러한 갈등과 비극을 넘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기도마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전사자 계곡을 찾아가는 날은 마침 오랜만에 내린 비로 드넓은 스페인 평원에 쌍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세우고 오색 무지개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스페인이 치러야 했던 그 잔혹했던 비극의 역사가 지금 어떠한 아픔으로 스페인 사람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선명한 무지개는 마치 평화와 용서의 종소리처럼 비 개인 스페인 하늘을 동화처럼 아름답게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은 아직도 참혹한 아픔을 땅 속 깊이 묻어놓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생각하면 스페인의 아픔도 우리 세기의 모든 회환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모순의 한쪽을 억압하거나 모순 그 자체를 은폐하는 거대한 기념물을 축조하는 것이 방법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비극을 재생산하지 않는 새로운 구조의 건설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의 건설에 앞서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은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창조적 긴장’으로 이끌어가는 지혜의 계발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의 계발은 창조적 긴장을 사회의 토대 속에 미리미리 입력시켜 나가는 매일매일의 실천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은 너무나 늦은 땅이었습니다. 카이도스 계곡의 십자가 역시 너무나 늦은 종소리였습니다. 그러기에 뉘늦은 회한을 응어리로 앓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기념물 앞에서 그것이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종소리인가를 끊임없이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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