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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 춤과 카파도키아
척박한 삶은 온몸을 울리는 맥박처럼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경종입니다
터키 중부 지역 아나톨리아에 있는 코니아는 노아의 홍수가 지나간 다음 가장 먼저 생긴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정이 넉넉하지 않은 여정에서 코니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관광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비행기 편으로 터키의 수도 알카라에 도착한 다음, 앙카라에서 다시 자동차로 이동해야 하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코니아로 향했습니다.
코니아는 이슬람 전통이 완고하게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내가 이 고도를 찾아온 이유는 이곳이 사마 춤(Sama Dance)의 본고장이기 때문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이 사마 춤의 세계가 그들의 정신적 저변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란 교의(敎義)와 의례(儀禮)가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해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하는 패러다임을 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 춤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단순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마 춤은 단소와 북 장단에 맞춰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한 손을 땅을 향한 채 회전(自傳)하면서 원운동(公錢)을 하는 매우 단순한 춤입니다. 자전이면서 동시에 공전인 2중, 3중의 끊임없는 원무(圓舞)입니다.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작을 세 시간 이상 계속합니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여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고, 이러한 몰아의 체험을 통하여 알라에게 자신을 일치시켜갑니다.
나는 알라라는 최고의 가치가 원운동의 반복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형식을 통해 추구된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한 육체적 동작과 고도의 정신적 가치가 만나되 그것이 만나는 과정의 소박함과 확실함이 감명 깊었습니다.
사마 춤은 이슬람 신비주의로 알려진 수피 사상(Sufism)에서 발전한, 말하자면 민중적인 이슬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교단이 난해한 문자를 장벽으로 삼아 현학적이고 교조적인 것으로 군림하자, 이러한 권위에 반대하고 이제는 이론이 아니라 체험을 통하여 직접 알라에게 다가가려는 민중 운동이 시작됩니다. 불교사에서 나타나듯이 선종이 교종을 대체하는 배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운동을 이끈 사람이 철학자이자 시인인 메블랴나 잘랄레딘 루미(Mevlana Celaleddin Rummi)였으며 그 본고장이 이곳 코니아의 메블랴나 종단입니다. 교도들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메블랴나 박물관에는 루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박물관에 딸린 그의 거처에는 그가 제자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등신대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니아에서 사마 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결국 갖지 못하였습니다.
춤을 출 줄도 모르면서 사마 춤을 찾아가는 나를 당신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밝히는 것이지만 내가 보고자 한 것은 춤이 아니라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라는, 20세기를 통해 끊임없이 추구되었던 철학적 주제였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자료를 통해 접했던 사마 춤의 세계는 바로 이러한 주제를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사마 춤에서는 춤이라는 운동성과 원이라는 정지성이 구도(求道)와 명상(瞑想)이라는 정신적 대칭점을 얻음으로써 동(動)과 정(靜)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한 사람의 자전이 십여 명으로 이루어진 소원(小圓)의 공전 궤도에 통합되고, 십여 개의 소원은 자전하면서 다시 대원(大圓)의 공전 궤도로 통합되는 중층적 원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소박한 민중적 정서와 가시적인 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더 큰 원의 호(弧)를 긋고 있는 통합과 조화의 형식입니다.
사마 춤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몰아나 무아의 경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높은 수준의 일체감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이 단독으로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고독한 좌선(坐禪)과도 다르고, 개인이 '열광하는 전체' 속에 해소됨으로써 느끼는 도취와도 다른 것입니다. 개개인이 도달하는 몰아나 일체감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확장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마 춤의 세계는 터키 중부 지방의 삭막한 땅에서 재조명해야 비로소 그 진실을 꺠달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척박한 땅이 사람들로 하여금 터득하게 한 삶의 원리가 바로 사마 춤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코니아를 떠나 터키 내륙 지방의 사막과 같은 불모의 땅을 하루 종일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이 사마 춤의 세계를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무 한 그루, 강물 한 줄기 없는 황무지를 온종일 달려야 했던 터키 중부 지방의 황량함을ㄹ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삭막한 여정의 끝에 카파도키아가 있었습니다.

 

카파도키아는 침식이 빠른 사람 지대에 화산 폭발로 용암과 화산재가 덮이고 다시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입니다. 기묘한 석회석 산과 계곡 때문에 관광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나는 산과 계곡, 그리고 죽순처럼 늘어서 있는 돌기둥 무리의 아름다움에 찬탄하기에 앞서, 그 폐허와 같은 삭막함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위르귀프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삭막한 석회석 산에 동굴을 파고 살아왔던 수많은 동굴 주거지가 남아 있으며, 카이말리에는 아예 땅 속에 만든 개미집과 같은 지하 도시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캄캄한 미로 곳곳에는 추격자를 저지하는 갖가지 장애물들이 고안되어 있었습니다.
카파도키아는 한마디로 쫓겨온 사람들이 숨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잊혀진 땅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왕에게도, 로마에도, 비잔틴에도, 셀주크튀르크에도 이곳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코니아-카이세리-시바스-페르시아로 통하는 술탄로드의 무역로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버려진 땅으로 쫓겨온 사람들이 그들의 터전으로 다시 일구어낸 땅이었습니다.
괴뢰메에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흘러와서 정착한 기독교인들의 교회가 있습니다. 단단한 용암 덮개를 가진 사암층은 동굴을 파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이곳의 암벽과 돌기둥에는 동굴을 파서 만든 교회가 많습니다. 단 한 사람이 기도하고 수도했던 교회도 있습니다.
나는 어둡고 좁은 동굴 교회의 석벽을 더듬으며 남아 있는 프레스코 성화를 바라보았습니다. 과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의 교회였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이미 폐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기구(祈求)했던 정신의 순결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카파도키아의 유적지에서 다시 한 번 사마 춤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춤이라는 형식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 동굴 형식이기 때문에 외형이 서로 구별되지 않기도 하지만 젤베 계곡에는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신앙의 차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삭막한 땅에서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로부터 이끌어낸 공존이었고 양심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개인의 고뇌와 고독이 결코 앙상하게 뼈를 드러내는 법 없이 이웃과 흔연히 어우러지는 사마 춤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사마 춤의 세계와 카파도키아의 삶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삭막한 터키 중부를 여행하는 동안 문득문득 터키의 하늘에서 갑자기 울려오던 코란의 낭송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에서 울려오는 코란의 낭송을 당신은 경종(警鐘)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죄사함을 기구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기 전에 방지하게 하는 예방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예방 의학이 의학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인 것처럼, 사후에 죄사함을 기도하기보다 사전에 죄의 예방을 기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일입니다. 어딘가 높은 곳에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눈을 갖는다는 것은 어두운 하늘의 천둥처럼 자신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하는 양심이며, 동시에 자신을 수많은 총중(叢中)의 하나로 낮게 받아들이게 하는 겸손함입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종교든 예술이든 깨달음을 삶의 바깥에 둔다는 것은 그것을 삶 속에 지니고 있는 것만 못한 법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마 춤이 추구해온 나와 우리의 일체감, 그리고 카파도키아의 척박함이 키워낸 정신의 고결함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 그 자체가 소리 없는 코란의 낭송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맥박처럼 혈관 속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지탱해주는 무언의 경종이기 때문입니다.

 

메블랴나 루미가 저처하던 집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가르침'(Dyorki)이 적혀 있었습니다.

 

알라와 함께 있지 아니하면 그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함께(Beraber)'가 아니다.
금전의 노예가 되지 말라.
부자가 되지 말라.
꾀를 부려 세상을 살아가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인의 말은 성인만이 알 수 있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구절에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구절을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의미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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