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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일출을 기다리며
어두운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 새로운 태양을 띄워올립니다

오늘은 마지막 엽서를 띄웁니다. 지난 1년 동안 주소도 없는 당신에게 띄운 엽서였습니다. 나는 무슨 이야기로 이 마지막 엽서를 채울까 망설이다가 태산(泰山)과 곡부(曲阜), 그리고 황하(黃河)의 이야기를 적으려 합니다.
태산은 당신도 잘 알다시피 오악지수(五岳之首)로 불리는 중국의 신산입니다. 전설의 임금인 황제(黃帝)로부터 요(堯), 순(舜) 이래 100여 명이 넘는 역대 제왕들이 하늘에 봉선(封禪)을 고해온 산입니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은 태산으로 돌아간다(魂歸泰山)’고 믿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 묵객, 명사들이 이곳에 오르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산이기도 합니다. 1,800여 곳에 비각(碑閣)과 제자(題字)를 남겨놓은 석각(石刻), 서법(書法)의 박물관입니다.

 

우리는 남천문(南天問)까지 실어다주는 케이블카 덕분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태산의 크기를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읊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맞닥뜨린 고생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벌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진눈깨비가 휘몰아치고 난방과 물마저 끊긴 냉방에서 밤을 지새고 그래도 일출을 보리라 마음을 다그치며 나선 새벽의 등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빙판이었습니다. 얼음으로 뒤덮인 석경(石經)은 단 한 걸음을 허락하는 데도 인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출 시간에 겨우 도착한 산정(山頂)에서 다시 세찬 바람과 진눈깨비를 맞으며 기다렸던 두 시간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결국 일출을 보지 못하고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악천후로 말미암아 이미 케이블카는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하산 길은 오를 때보다 더 험난하였습니다. 과연 태산이었습니다. 한무제(漢武帝)가 태사령 사마담(司馬談)을 기어이 떼어두고 나머지 길은 혼자서 오르겠다고 고집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결심보다는 반성이 어렵고 오르기보다는 내려오기가 어렵기는 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에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은 물론이고 역대 제왕들이 다투어 건립한 수많은 사당과 제각, 숲, 능묘 들로 말미암아 크고 복잡하기가 태산보다 더 했습니다. 공자를 비롯하여 맹자, 순자가 그 뼈를 묻은 땅이며 춘추 이래 학(學)과 예(禮)의 본 고장으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이데올로기가 이곳을 무대로 삼아왔음이 역력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투어 기울여온 엄청난 적공(積功)으로 말미암아 나는 어디서 공자의 모습을 찾아야 할지 참으로 난감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태산, 곡부에 이어 황하를 찾아갔습니다. 황하는 천변만화의 길고 긴 굽이굽이는 물론이며, 이 대하의 유역에서 흥망을 거듭한 인걸과 나라의 역사에 이르면 어느 곳 하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더욱이 십년구한(十年九旱) 가뭄과 홍수에 목숨을 맡겨온 수많은 민초들의 애화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夏), 은(殷), 주(周)를 시작으로 아홉 개의 왕조가 흥망을 거듭한 중원(中原)의 황하를 찾아보는 것으로 그치기로 했습니다. 이 중원 땅의 황하가 바로 문명의 요람이며 지금도 고도인 낙양(洛陽), 정주(鄭州), 개봉(開封)을 적시며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하는 수량이 죽어 이미 기대했던 옛날의 황하가 아니었습니다. 석양의 황하도, 일출의 황하도 어느 것이나 여전히 자욱한 물안개 속에서 잠자듯 수척한 모습을 간신히 드러내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망상공원에서 본 동상의 표정입니다. 황하의 치수(治水)에 일생을 바친 우(禹)임금의 동상이 근심과 걱정으로 황하를 주시하는 근심스런 표정임에 비하여 마우쩌둥(毛澤東) 주석의 표정에는 그윽한 시선을 강물에 던지고 있는 관조(觀照)의 빛이 여실합니다. 황하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사뭇 다른 것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태산에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곡부에서 공자를 만나지 못하고, 다시 황하의 수척한 모습을 안개에 묻어두고 돌아오면서 나는 참으로 착잡한 생각에 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당신에게 띄울 마지막 엽서의 말이 부족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새해와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 비록 우리들이 목마르게 기다렸던 새날들이 결국 갈증만을 더해줄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새날에 대한 소망이 비록 힘겨운 사람들의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작게는 하루의 아침에, 일년의 첫 날에, 그리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기의 벽두에 스스로를 다짐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계기를 부단히 만들어나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의 여정이 난감함과 착잡함의 연속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 마지막 엽서에서만은 당신과 내가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이야기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태산 일출을 보지 못하고 험한 얼음길을 내려오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산 위에서 떠오르는 해는 진정한 해가 아니다.’ 동해의 일출도, 태산의 일출도 그것이 그냥 떠오르는 어제 저녁의 해라면 그것은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자위 같은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 생각해보면 새로운 아침 해는 우리가 우리들의 힘으로 띄워올리는 태양이라야 할 것입니다. 어둔 밤을 잠자지 않고 모닥불을 지키듯 끊임없이 불을 지펴 키워낸 태양이 아니라면 그것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못 될 터입니다.
곡부의 공자 성전에서도 같은 생각에 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자의 모습도 결국은 우리가 찾아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그려내는 공자의 상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의 진정한 고뇌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들 스스로의 과제로부터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습니다.
공자의 편력과 고뇌의 산물은 한마디로 ‘군자(君子)’였습니다. 춘추전국 시대라는 난세에 던져진 군자라는 새로운 엘리트 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는 종법사회(宗法社會)의 귀족이 아님은 물론이며, 병가(兵家)처럼 군사전략가도 아니었고 법가(法家)처럼 부국강병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단이 배우고(學) 실천하며(習) 더불어 함께 하는(朋) 붕우집단(朋友集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제시한 것은 새로운 엘리트 상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그가 세상을 향해 들어보인 것은 ‘새로운 시대는 세로운 엘리트가 만들어내는 것이다’라는 그의 철학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가 시대를 뛰어넘는 만세의 목탁으로 남는 이유가 있다면 이러한 철학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냑 20세기를 이끌고 간 엘리트가 누구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공자는 아마 유가도, 법가도, 병가도 아닌 자본가(資本家)라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21세기의 새로운 엘리트를 그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공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자가 엘리트 상으로 제시한 군자는 난세의 해게모니를 장악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21세기의 엘리트 상에 대해서는 공자에게 질문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할 우리들의 몫일 따름입니다. 그는 다만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엘리트가 담보한다는 원칙을 이야기하는 선에서 절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자는 자기 자신을 일컬어 ‘배워서 아는 정도의 사람(學而知之者)’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란 곤경을 당하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困而不知之者)’ 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비단 오늘의 곤경으로부터 비록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곤경을 당하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모의 한파와 함께 다시 어둡고 엄혹한 곤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곤경이 비록 우리들이 이룩해놓은 크고 작은 달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하더라도, 다만 통절한 깨달음 하나만이라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엽서를 끝내고 옆에다 태산 일출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에 그림 속의 해를 지웠습니다. 물론 일출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산에 아침 해를 그려 넣는 일은 당신에게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곤경에서 배우고 어둔 밤을 지키며 새로운 태양을 띄워올리는 일은 새로운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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