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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21세기 경영
새로운 양식, 새로운 철학의 탄생은 언제나 멀고 불편한 땅에서 그 모태를 발견해온 것이 인류사의 역정입니다
베트남에서는 두 개의 혁명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북부에 있는 수도 하노이는 사회주의 체제에 자본주의를 접합시키고 있는 반면, 남부의 호치민 시는 자본주의 체제에 사회주의를 접합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통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병합한 것임에 비하여, 베트남은 전쟁 방식에 의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통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이 앞으로 쌓아갈 경험은 독일과는 다른 또 하나의 과정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경제전략연구소의 누엔 쾅 타이(Nguyen Quang Thai) 부소장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먼저 베트남의 도이모이(改革) 정책과 그것을 갖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 모델과의 차이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도이모이의 과정을 유형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복잡한 논의를 덜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베트남의 독자 노선에 관한 설명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노선은 그도 인정했듯이 기본적으로는 중국과 가까운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빅 뱅(Big Bang)' 으로 불리는 러시아 방식을 베트남에서 채용하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가 소유 부문의 비중이 전체 경제의 80%가 넘고, 또 이 부문의 정체가 최대 장애가 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당연히 충격 요법에 의한 정치 개혁 즉, 이행 문제를 축으로 전개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 소유 부문이 농업 부문과 민간 부문에 비해 그 비중이 훨씬 낮은 베트남의 경우는 개혁의 초기 조건이 중국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 구성의 유사성 이외에도 베트남은 ‘작은 중국’ 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과는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중국과는 국경 문제로 군사적 충돌을 치르기도 했지만 공자(孔子) 사당을 모시고 있다거나 한문으로 과거를 치르는 등 역사, 문화, 풍습에서 같은 문화권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다’ 는 인사를 ‘까믄(感恩)이라 하고, 동서남북을 ’동떠이남박‘ 이라고 할 정도로 한자 문화권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동질성도 중국 방식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근에는 시장 경제와 체제 문제 사이의 갈등 때문에 이행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지만, 베트남의 개혁은 아직은 이행보다는 개발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경제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정책 관계자들의 대화 중에 “우리 당은……”이라는 말을 수시로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증거의 하나입니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과 서방측의 관심에 대해서도 그것은 중국 포위라는 전통적인 아시아 전략과 무관할 수 없다고 믿으며, 나아가서 혹시나 화평연변(和平軟變)이라는 체계 붕괴의 전술이 아닌가, 하는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의 지도를 축으로 하여 유연하고 점진적인 정치 발전으로 이행 문제를 관리함으로써 지도 중심이 급격히 무력해지는 소휘 권력의 공동화와 그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부터 치러야 하는 가난과의 전쟁에서 결코 ‘승패가 역전되는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는 의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베트남의 우려와 경계, 그리고 그들의 의지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결국 외본 자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베트남의 현실입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은 앞으로 이러한 외생적(外甥的) 계기를 어떻게 내부 구조 속으로 정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때문에 베트남에서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의 경제 협력 방식은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기업들이 돌다리를 두드리듯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그나마 단기적인 이윤에 집착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이 불안을 느끼는 부분을 함께 껴안아주고 취약한 부분에 과감히 투자하는 장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곧 베트남 사람들의 신뢰와 친근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베트남 대우 본부장은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도로는 물론 전기, 전화마저 여의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사회주의적’ 감시와 규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던 ‘개척 시대’ 의 이야기였습니다. 호치민 지사장의 경우는 이러한 경협 방식 추진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경영자라기보다는 ‘동반자’ 라는, 훨씬 더 진솔한 인간적 보람을 느꼈다고 술회했습니다.
나는 물론 베트남의 이러한 친절과 신뢰가 어떠한 수준인지 알지 못합니다. 더구나 자본과 기업의 논리가 과연 어느 높이까지 동반자로 남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느 개인의 인생이든 또는 자본의 운동이든 동반의 제1조건은 착목(着目)하는 곳이 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멀수록 동반의 도정(道程)은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긴 동반의 도정에서 혹시라도 가난을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통감하는 애정에 합의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의 의미를 ‘달성’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축적하는 경험이 앞으로 예상되는 남북 경제 협력에서 귀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실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새로운 양식, 새로운 철학의 탄생은 언제나 기득권이 보장된 안방에서가 아니라 멀고 불편한 땅에서 그 모태를 발견해온 것이 인류사의 역정(歷程)이었습니다.

 

베트남은 이처럼 새로운 세기의 실험장으로서도 매우 의미 있는 과제를 대면하고 있는 역사적 현장입니다. 나는 베트남의 가난한 농촌 길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베트남만큼 우리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달리 없다던 당신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우리 나라 현대사 역시 베트남의 현대사와 마찬가지로 오랜 식민지 시절에 이은 분단과 전쟁으로 곳곳에 숱한 상처를 묻어놓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역사는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과거 남만(南蠻)이라 불리던 땅으로, 부족장 맹획(孟獲)이 제갈공명에게 일곱 번씩이나 포로가 되면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칠금칠종(七擒七宗)의 땅이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은 중국으로부터 역시 동이(東夷)라 불리던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아픈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망하는 간구(懇求)의 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베트남 역시 관리들의 부정, 밀수, 매춘 등 각종 사회 부조리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방 과정에 있는 다른 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는 ‘윗물이 맑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국가 지도층의 청렴성과 헌신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령 아랫물이 혼탁하다고 하더라도 윗물이 맑기만 하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호치민(胡思明)의 존재는 베트남의 귀중한 자산이었습니다. 아시아에 대하여 인색하기 짝이 없는 서방측 언론에서조차도 그를 일컬어 ‘근원(根源)이며 방향(方向)’이라는 헌사를 바치고 있음에서 알 수 있지만 베트남 해방의 지도자인 호치민은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심으로 지금도 의연히 살아 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보다 빠른 2020년에 현대 국가로 일어서리라는 결의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결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베트남이 지향하는 ‘문명 사회’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긴 도정에서 베트남이 어떠한 우여곡절을 겪을지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베트남이 지향하는 그 문명 사회가 결코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아픔을 두루 아우르는 온고(溫故)와 창신(創新)의 폭넓은 총화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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