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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마음, 갠지스 강
No money No problem, No problem No spirit.
오늘은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Varanasi)에서 이 엽서를 띄웁니다. 바라나시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찾아와 ‘인도의 마음’을 길어가는 곳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갠지스를 ‘강가(Ganga)’라고 부릅니다만 나는 당신의 편의를 위해 갠지스라 쓰겠습니다.
갠지스 강은 당신도 잘 알고 있듯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하여 인도양으로 흘러들기까지 메마른 인도 대륙을 적시며 곳곳에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운 인도의 젖줄입니다. 갠지스강이 이곳 바라나시에 이르면 마치 전생으로부터 흘러오던 강물이 잠시 이곳을 이승으로 삼다가 떠나려는 듯 초승달같은 만곡(彎曲)을 이루면서 유속(流速)도 뚝 떨어집니다.

 

나는 아직도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강에 배를 띄우고 강물과 함께 천천히 흘러갑니다. 강가는 벌써 강물에 몸을 씻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으면 이승에서 지은 모든 죄를 씻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트(Ghat)'라는 이 목욕장은 강물에 닿아 있는 긴 돌계단으로, 이 돌계단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만치 두 개의 불꽃이 아직도 어둠에 묻혀 있는 수면을 밝히며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불에 타고 있는 사람의 형체가 장작불 속으로 보입니다. 이곳 갠지스 강가에서 죽고 그 시신을 태운 재를 강물에 흘려보내면 윤회를 벗고 영원한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장작 값으로 손목에 팔찌 하나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이곳에 와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장작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화장터 주변에는 타다남은 시체를 얻기 위해 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 개가 눈에 띕니다.
나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워치맨의 감시를 피하여 카메라를 들다가 그만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말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의 가공(架空)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정서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당혹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외부 세계와 인간 존재가 직선으로 대면했을 때 돌출하는 충격, ‘세계는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저것과 나의 대면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싱싱한 의문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당혹감과 충격은 현장을 떠나서는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사유화하려는 욕심은 우리들의 정신을 박제화하는 상투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창백하기로 말하자면 내가 띄우는 이 엽서 속의 언어들로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당신이 직접 이곳에 오기 바랍니다. 꼭 이곳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당혹감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먼저 주입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어느덧 갠지스 강에 해가 뜨고 아침해는 붉은 노을을 강물 위에 던지며 마치 등잔의 심지를 내려놓듯 화장터의 불빛도 줄여놓습니다. 그리고 갠지스 강은 한 줄기 긴 빛으로 변합니다. 한 줄기 강물로부터 끝없는 시간의 흐름으로 변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류하는 종교가 되고 철학이 됩니다. 나(Atman)와 우주(Brahman)를 통일하는 달관(達觀)이 됩니다. 삶과 죽음, 영광과 좌절, 부귀와 빈천을 한 줄기 강물로 흘려보냅니다. 빈천이나 부귀는 모두 전생에서 지은 당연한 업보이며, 이승의 가난과 괴로움도 저승에서는 벗을 수 있다는 무한한 윤회를 믿고 있습니다. 선(善, Goodness)은 얼마든지 줄 수 있고 또 얼마든지 받을 수도 있지만 돈은 그럴 수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물에서 몸을 씻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노 머니 노 프로블럼.”(No money No problem.)
나는 그가 던진 만트라(Mantra, 警句)․ 화답하였습니다.
“노 프로블럼 노 스피릿.”(No problem No spirit.)

 

나는 갠지스 강이 안겨주는 다관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모든 실재(實在)를 비실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생각하면 그러한 달관에 비록 체념의 흔적이 없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 매우 귀중한 깨달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빨리 도달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끝없는 집착의 윤회를 통틀어 반성케 하는 귀중한 깨달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갠지스 강은 척박한 인도 땅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번영과 풍요의 대륙을 가로질러 흘러가야 할 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이 아니라 백 년, 천 년 이승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질러 흘러가야 할 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갠지스 강을 새로운 세기의 한복판에 만들어내는 일이 우리 시대의 과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뱃사공 람지는 다음에 다시 갠지스 강을 찾아올 때에는 손목시계 한 개를 갖다주기를 내게 부탁했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손목시계의 소유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노동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배를 빌린 손님에게, 그리고 자기를 고용하고 있는 배 임자에게도 약속을 지키려는 그의 양심이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나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고민했습니다. 어느 투자금융회사의 창립 10주년 기념품인 내 시계는 조금도 값나가는 것이 아니었지만 당장의 여정 때문에 끝나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갠지스 강을 찾아오게 된다면 그에게 손목 시계 한 개를 선물하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에게 주는 시계는 그의 삶과 노동이 되어 갠지스 강과 함께 흘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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