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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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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에 이런 엇박자가 또 있을까

 

박세길 역사연구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동창모임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출세한 인간들의 잘난 척하는 꼴이 보기 싫기도 했거니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 동창들이 보기에 운동권 외골수(?)로 사는 내가 무척이나 한심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를 아낀다고 하는 녀석들은 대놓고 나무라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부모 형제 생각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무척이나 존중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친구로 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녀석들마저 크게 늘었다. 정말 이상했다. 분명한 것은 내 처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나는 2008년 이후 여러 해 동안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동창들의 태도 변화가 달라진 민심의 반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추악한 몰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세상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논리인 승자독식의 끝은 공멸일 뿐이며 세상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면 망조가 들 수밖에 없음을 간파했다. 일순간에 신자유주의는 창공에 나부끼는 찬란한 깃발에서 땅에 나뒹구는 걸레조각으로 전락했다. 참으로 엄청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기업 경영자들이다. 미국 자동차 빅3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듯이 기업이 마냥 신자유주의 식으로 움직였다가는 지속가능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적지 않은 기업 경영자들이 ‘돈’이 아닌 ‘사람’을 고민의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면서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은 것은 신영복 선생이 주관한 성공회대 인문학 강좌였다. 지난해 그 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문학 강좌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하계특강이 있는데 나보고 맡아 보라는 것이었다. 주제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영철학 정립이었다. 나는 좋은 기회라 여겨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컸다. 졸업생의 절대다수가 내로라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인데 운동권 골수로 알려진 내 강의에 과연 얼마나 올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좌 당일 주체측은 의자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부는 자리가 없어 뒤에서 선 자세로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들은 무척 속이 타 있었던 것이다.

 

분명 세상 민심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가위눌려 살았던 사람들은 대담하게 “함께 살자!”며 재벌 중심의 승자독식 체제에 도전했다. 이른바 ‘을들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분위기를 타면서 솜방망이만 휘두르던 사법부도 재벌 총수들을 향해 실형을 선고하는 용감성(?)을 보였다.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던 젊은 세대도 비록 정서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급진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세 높게 진행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철도노동자들 사이에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 보자는 열의가 들끓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시종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데는 민영화를 둘러싼 민심 변화가 큰 몫을 했다. 2008년 이전 민영화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선’이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민영화는 나라를 망쳐 먹기 딱 좋은 ‘악’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등장했고 곧바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호응 대자보가 줄을 이었다. 대자보 열풍이 불면서 그동안 침묵과 냉소로 일관하던 대학생들마저 세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동시에 대자보라는 형식을 빌려 행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은 진보가 파상공세를 펼치면서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고도 남음이 있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세상에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는 없을 것이다. 진보는 창공을 향치솟기는 고사하고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소름 끼치도록 냉혹하다. 기회는 제때 잡지 못하면 위기로 돌변해 우리의 목을 조여 댄다. 진보가 지금의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일본의 뒤를 따라갈 공산이 매우 크다. 보수로 일색화되면서 진보가 설 땅이 사라지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남 탓으로만 돌리고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조차 차단할 것인가. 그러는 사이 진보는 빠르게 죽어 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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