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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과 文(學的)이라는 것

 

임규찬 |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신영복2007.jpg 

신영복 선생. ⓒ박원우

 

 

오래오래 읽고 싶다. 어려서 눈깔사탕 하나 얻으면 조금조금 단맛을 빨며 입안 가득 맴도는 단맛과 단내를 즐겼듯이 그렇게 읽고 싶다. 조금씩 야금야금……. 물론 눈깔사탕도 완전히 녹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천천히만 먹지 않았지. 때가 되면 와작 씹는 맛이라니. 이 책도 그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몰입이다. 천천히 앞으로 뒤로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다 하얗게 날밤을 샌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런 독서 체험이 어디 나뿐이었으랴. 가슴이 벅차 읽던 책을 접어두고 문득문득 멍하니 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마저 소중해지던 독서의 백야白夜. 법정 스님의 표현대로 가슴에 비가 내렸다. 아니 이슬이 적셨다. 아니 바람이 불었다. ─ 어느 날의 독서일기에서

 

이른바 문학평론가로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다가 그의 글이 매우 고전적이면서 매우 현대적이라는 사실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제 자신 또한 옛 선인들의 이런저런 비평적 발언들이 그 자체로 좋아 자주 읽기는 했지만, 그런 비평방식을 현대적으로 적절히 변용變容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 드리면 그걸 감당할 만한 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을 처음 대면하자마자 그런 옛 비평적 언술들이 고스란히 들어앉아 작품과 한 무더기가 되는 독서 순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 스스로 옛것을 인용하고 싶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을 때 자주 참조하는 글이 있습니다. 이규보의 「구불의체론九不宜體論」입니다.

 

시에는 아홉 가지 마땅치 않은 체가 있는데, 이것은 내가 깊이 생각하여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한 편의 시 안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이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한 수레에 귀신을 많이 실은 체)이다. 옛사람의 뜻을 훔쳐 쓰는 것은 잘 훔친다 해도 안 되는데, 제대로 훔치지도 못한 것이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서투른 도둑이 쉽게 잡히는 체)이다. 근거 없이 강운强韻을 쓰는 것이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큰 활을 잘 벌리지도 못한 체)이다. 자기의 재주를 헤아리지 않고 압운하여 지나치게 어긋난 것이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술을 지나치게 취토록 마신 체)이다. 즐겨 어려운 말을 써서 사람을 미혹케 하는 것은 설갱도맹체設坑盜盲體(구덩이를 파놓고 소경을 인도하는 체)이고, 남의 글을 인용하여 말이 순하지 않은데 애써 끌어다 쓰는 것이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억지로 남을 따르게 하는 체)이다. 일상어를 많이 쓰는 것이 촌부회담체村父會談體(촌 늙은이들의 이야기체)이다. 공자와 맹자의 이름자를 범하기 좋아하는 것이 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존경할 사람을 업신여기는 체)이다. 말이 거친데 깎아버리지 않는 것은 낭유만전체(밭에 가라지가 가득히 우거진 체)이다. 이러한 마땅치 않은 체들을 면할 수 있는 다음에야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이규보의 「백운소설」 중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에세이로 보든 산문으로 보든 정작 문학장 안에서는 논의가 좀 막연히 이루어졌습니다. 제 스스로도 간혹 선생님의 ‘생각들’을 참조해 문학비평에 활용한 적이 많지 않았고, 신영복의 글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와 공부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좀 낯선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이 덕에 공부 좀 하자!’는 생각이 앞섰던 때문입니다. (웃음)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중심에 놓여지고, 나머지 텍스트들은 그 책의 ‘해설서’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선생의 글에 사색의 깊이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른바 ‘글맛’이라는 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준 감동을 잊을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知에서 호好로, 호好에서 낙樂으로

 

농활農活 이야기로 화두를 꺼내볼까요? 좀 엉뚱하죠? 인터넷에서 신영복 선생 관련 자료를 뒤지다 2004년쯤에 만들어진 대학생 농활 지침서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짜깁기해 놓은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획기적입니다. 농활에 관한 실무적인 내용이 아니고 농활에 임하는 태도, 정신 자세, 세계관에 대한 문제들을 선생의 글에서 가져와 정리를 한 것이지요. 참 대단했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이 실제 우리 생활에 적용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떤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례에서 “하나를 알고 하나를 실천하면 눈과 발이 함께 나아가게 될 것이다一知一行 足目兩進”고 했던 홍대용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사례를 볼까요? 정도상이라는 작가가 쓴 『모란시장 여자』이라는 작품집에 해설을 쓰면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참조해서 이야기를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논어』의 글줄을 인용했는데, 그 부분을 잠시 볼까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진술입니다. 이 말은 흔히 교육이나 작품 감상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대목이지만, 창작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발언입니다. 이 말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강의』(2005)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 지知가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면, 호好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일 것이고, 그에 비하면 낙樂은 대상과 주체가 흔연히 일체화된 생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계 인식이 정보 형태의 파편적 분석지分析知에 머물거나 이데올로기적 가치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진정 ‘낙樂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기에 지에서 호로, 호에서 낙으로, 그렇게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 나가는 일이 중요해진다고 풀이를 한 것이지요.

 

저는 이 대목을 어떤 식으로 활용했느냐면,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미적 성취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파악했습니다. 작가가 창작을 할 때 작품세계 속에서 주인공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라고 본 것이지요. 예컨대 작가의 의도 그리고 거기서 파악된 어떤 인지적 요소를 깨닫는 차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그것이 진정 합일合一을 이루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정서적 공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경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인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음을 자신이 살아야 할 곳에 마음껏 노닐게 함으로써 만물萬物을 부리되 만물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지여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에 신경숙의 신작소설 『리진』을 봤는데, 작품 평가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뒷 부분은 좀 못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리진이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느끼는 심리를 표현한 앞부분은 ‘참, 대단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경숙이 ‘리진’을 어느 순간 자유롭게 놔두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 얽매이는 듯 하면서 얽매이지 않는 ‘낙樂의 경지’가 창작 행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 특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1980년대에 널리 읽힌 이유를 성찰해보면 선생의 글에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힘 같은 이런 부분들이 생동감 있게 포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1980년대 활동한 많은 사람들이 흐트러졌는가 하면, 침묵을 하는 경우가 참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신영복 선생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우람하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본다면, 우리는 왜 ‘노예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저는 신영복 선생의 ‘자유’라는 말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단계는 신영복 선생 자신이 구현하고 있는 통변, 활법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법도가 다 갖춰져 있으면서도 법도 밖으로 나올 수 있고, 변화무쌍하면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활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이 공부의 어느 단계에 들어서면 결정적인 것 같다는 말이지요. 신영복 선생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신영복은 원래 글을 잘 썼다’고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 2006)에서 말한 심은하 씨의 말보다는 선생 자신의 ‘노력’에 더 강조점을 둔 유홍준 선생의 말이 더 다가옵니다. 그릇의 크기를 넓히는 것은 노력을 통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감각의 차이가 크기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크기에 따라 보는 게 달라지는 것 또한 당연하지요. 고려 시대 이인로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재주는 그릇과 같아서 모나고 둥글고 한 것을 함께 갖출 수는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의 이목을 끄는 사물과 현상이 너무 많아서 만일 그 재능이 사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마치 둔한 말이 천리 원정에 오른 것처럼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멀리 달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뛰어난 재주가 있더라도 함부로 작품에 손을 대지 않고 반드시 그 재주를 갈고 닦은 후에야 족히 무지개 같은 광휘를 천고에 빛나게 하였다.

 

실제 작가들 가운데서도 등단 연후에 반짝 하고 사라진 작가들이 많습니다. 물론 긴 생명을 가지고, 작품을 크게 만들어가는 작가들도 분명 있지요. 우리 문학사도 길게 보면 작가 생명이 10년을 넘는 작가들이 별반 없습니다. 결국 이광수, 염상섭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짧게 보면 재기발랄한 글솜씨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많은 것이지요.

 

제 자신이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다가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심은하 씨는 그걸 ‘제한적 상황에서의 글쓰기’라고 규정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은 분명 그랬지요. 더 자유로웠다면 더 깊고 좋은 얘기를 더 많이 했을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냉정히 말씀 드리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그 후의 작품들을 놓고 의미부여를 한다면 어떻습니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가치가 훨씬 더 큰 것이 아닌가? 그 자체로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아마도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의 퇴고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편지 원본 모두 고친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1930년대는 카프KAPF가 해체되고 일제의 ‘검열檢閱’과 같은 탄압 정책이 더 심해진 때였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은 1970년대와 더불어 최고의 황금시대를 연출했습니다. 창조적 긴장이라는 것이 의외로 이런 측면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이 말은 곧 F.니체가 “좋은 글은 아팠을 때 나오는 것이다”고 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물론 고친 부분이 없이 썼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요. 하지만 일체 고친 부분이 없이 글을 썼다는 것을 상상해본다면, 사람이 가진 응집된 순간의 시간을 이해하면서 창조적 긴장과 연관시켜 보아야 하리라고 봅니다. 예컨대 이광수의 「무명」(1939)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친일 이후 이광수의 작품인데도 이광수 작품 중에서 최고작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연구자들이 「무명」을 꼽아요. 이 작품은 옥살이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광수가 ‘구술’해서 쓰여진 작품입니다. 주자가 한 말을 생각해볼까요? “비유컨대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 닭이 알을 품고 있지만 뭐 그리 따뜻하겠는가. 그러나 늘 품고 있기 때문에 알이 부화되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도 그런 창조적 순간의 경우였던 것이지요. I. 뉴턴이 사과가 떨어질 때, 평소에 고민했던 문제가 어느 한순간에 ‘탁!’ 해결되었잖아요?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김남주의 옥중시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경우와 어찌 보면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오늘에 와서 김남주 시인은 쏙 들어가버렸습니다. 1980년대에 갇혀버린 셈이랄까요.

 

 

루쉰, 정약용 그리고 신영복

 

『신영복 함께 읽기』를 검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영복 선생의 글과 자주 비교되는 대상이 있습니다. 단연 루쉰과 정약용이지요. 공부법에서 비교는 무언가의 내용과 위상을 가늠하는 데 가장 좋은 접근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의식적일 때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비교 대상을 만나서 같이 논의해보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공부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루쉰과 정약용, 이 두 사람은 흥미로운 인물들입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양식과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대상이지요. 그리고 고전의 현대화와 관련해서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루쉰이야말로 현재의 관점, 즉 현대적 관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과 함께 그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적절한 비교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알게 모르게 산문의 문학화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대상이 루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특히 또 한편으로 현대적 장르이지만 오늘날 곁가지 양식으로 자리잡은 수필과 구별하고자 할 때 더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문학 하시는 임형택 선생이 ‘현대적 산문’의 부활을 주창하는 글을 쓰셨습니다. 그분이 특히 강조한 사람의 글이 바로 루쉰입니다. 임형택 선생의 이 글은 조정래 선생의 글과 대비해서 보시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좋은 참고자료가 되리라고 봅니다. 임 교수는 중국에는 면면히 이어져 온 산문 전통이 오늘날까지 자리잡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임 교수의 개인 취향도 있겠지만,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시인 정지용과 소설가 이태준을 꼽았습니다. 1970년대 이후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리영희 선생과 신영복 선생을 거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루쉰을 한 축에 놓고, 리영희와 신영복의 글을 연결해서 보면 산문의 현대적 부활의 어떤 방향성이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분들의 글과, 지금은 거대한 아마추어리즘이 되어버린 수필의 최고봉인 피천득과 법정 스님의 글을 비교해보세요. 리영희와 신영복의 글을 어떤 맥락에 위치 지워야 할 것인가. 법정 스님의 글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물론 어떤 분들은 약간 폄하하는 분도 계시는데, 행복한 나와 가정과 소박한 꿈 속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편안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우리 시대에 큰 흐름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명인 선생이 그런 경계를 하셨죠? 어떤 분들은 신영복 선생의 글을 그렇게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크게 보아야 할 부분을 놓치고, 오직 사적인 측면에서 끌어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신영복 선생의 글을 ‘살아 있는 텍스트’로 읽으려 할 때, 필요한 작업이 바로 ‘관계론’의 창발적 활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가 쓴 글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신영복 선생의 발상과 접근 방식이 유사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사람에게 가르치기를 “자기가 서고 싶으면 상대방을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으면 상대방을 고 곳까지 가게 해주라”고 하였다. 소위 ‘상대방을 서게 해주고 상대방을 도달하게 해줌立人達人’은 단순히 남을 서게 하고 도달케 한다는 말이 아니고 바로 인류를 서게 하고 도달케 한다는 말이다. 그와 내가 인류를 구성하는 것이므로 그를 서게 하고 도달케 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서게 하고 도달케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인류를 서게 하고 도달케 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서게 하고 도달케 하는 것이 된다. ‘남의 일을 자기 자신에게 견주어 미루어 생각하여 줌’의 방법으로 이 ‘달達’자를 스스로 체득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에 이르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사회에서의 ‘아곤’과 ‘안타곤’도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곤은 경쟁하면서 서로 크는 것이고, 안타곤은 싸움을 붙여서 상대방을 깨부수고 올라가는 토너먼트 게임 같은 것이지요. 스스로 올라타는 것, 이건 F. 니체가 말했지요? 천재가 아니라 ‘독재자’라고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매우 대조적인 방식으로 루쉰과 신영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EBS 오디오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과 루쉰의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여성작가가 진행했는데, 신영복의 낮은 목소리와 성찰적 태도에 비해 루쉰의 글에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했지요. 아마도 꾸짖는 듯한 계몽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웃음) 1910년에서 많이 벗어난 2000년대는 달리 생각해볼 시간차가 분명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게 좋은 자세일까요. 신영복 선생의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선생의 자산을 비롯해 민주주의와 저항운동 등의 우리 역사의 경험들을 같이 끌어안고 해석하는 태도가 옳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루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희망의 길’ 이야기일 겁니다. “길이란 무엇이던가?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신영복 선생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루쉰에겐 다음과 같은 격렬한 맹수의 포효 또한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앞서 ‘증오’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던 것이지요. “문인이라면 뜨거운 증오심으로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뜨거운 증오심으로 ‘죽음의 설교자’들에 항전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가련한 시대에는 죽일 수 있어야 살릴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으며, 살릴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문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증오는 루쉰과 비슷한 맥락인 듯하면서도 달리 나타나는 듯합니다. “증오는 그것이 증오하는 경우든 증오를 받는 경우든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예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때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1983.7.29) 제 말씀은 루쉰의 글은 증오이고, 신영복의 글은 사랑이라는 식으로 보는 건 사랑 자체를 매우 왜소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증오와 사랑의 문제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분이 김남주 시인입니다. 김 시인은 『저 창살에 햇살이』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오늘의 현실이 어제와는 다르다고 해서 어제의 역사적인 실천과 그것의 문학적 대응을 오늘의 잣대로 잰다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어떤 저의마저 감지케 한다”고 말했지요. 이 말은 곧 함께 묶으면서 다른 차원의 구별(분리가 아니라!)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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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글은 성찰의 힘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성찰의 힘과 창조적 생성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통합이 창조성의 본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리하르트 빌헬림의 주역강의를 참조해볼 만합니다.

 

‘태’패에 있는 각 효들의 움직임 또한 창조(건괘)와 포용(곤괘)의 결합을 표현하고 있다. 창조는 힘차게 위를 향해 움직이고, 포용은 아래쪽으로 움직이며, 그들의 방향이 서로를 향함에 따라 두 괘는 서로에게 스며든다. 인간의 창조적인 과정도 이와 같다. 결국 예술 작품을 창조해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성, 포용, 그리고 공간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창조적이고 시간적이며 남성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물론 작가에 따라 남성적이거나 여성적 기질 가운데 어느 한쪽이 특히 강하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남성적 특징을 잘 나타내는 계보가 확실히 있습니다. 신채호, 심훈 그리고 리영희 선생 같은 그런 경우이지요. 반면에 김소월, 한용운, 그리고 법정 스님 같은 분들이 여성적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성적 계보가 의외로 약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이유 때문에 한편으로 신영복 선생 글의 대중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대중들에게 파고들어가는 힘은 다르겠지요? 1980년대와 민주주의 이후의 시대인 지금과는 다르잖아요? 어느 것이 달성된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신영복 선생 글의 대중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 글이 갖고 있는 제일의 가치는 바로 ‘성찰’적 가치일 겁니다. 뭔가를 도달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씨앗을 준비하는 이런 시기에 신영복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글과 사유는 그런 세계와 결부된 힘이 있었던 것이지요. 세월을 이겨내는 창조적 힘의 생성력 문제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F.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철학자를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노예와 힘있는 자라는 기준이 그것이지요. 이것은 그 자체로 보면 큰 동력이지만, 그 대상이 있는 것이어서 오늘에 와서는 허방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의 철학자와 철학적 노동자라는 분류법이 더 적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의 철학자는 자신의 가치를 입법화하는 사람입니다. 철학적 노동자는 자기 개념을 창출하지 못하고 목록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신영복 선생은 대지적 사유와 내성적 글쓰기를 갖춘 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시대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큰 작가 혹은 대가 대접을 안 해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큰 사람을 더 크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풍토가 좀 아쉽습니다.

 

왜 신영복인가? 이 문제를 함께 고려할 때 ‘진선미眞善美’의 문제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선미란 고대 그리스부터 서양 철학의 주류적 인간관입니다. 이성 지성을 우리 말로 ‘앎’이라 하고, 의지 행위를 ‘함’이라 할 때, 감성 욕망은 ‘(느)낌(새)’ 또는 ‘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학문, 종교, 예술을 진선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I. 칸트의 비판 세 개가 연상되죠?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근대 역사도 과학혁명, 종교혁명, 르네상스, 이 세 차원이 주요한 인간영역에 편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합된 맥락에서 보려는 사유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예컨대 종교라는 것도 우리는 인생, 인간의 행동, 실천을 중심에 놓고 앞뒤를 아우르는 어떤 것으로 본 것이지요. 동양의 고전이 일종의 ‘경전’으로 읽히는 것 또한 그런 이치이지요.

 

요즘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 그러지요? 포스트모던에서 미의 시각은 절대화된 시각에서 보고 있습니다. 데리다 식의 해체의식이란 문제의식은 공유해야 하지만, 파편화되고 하는 부분들을 경계해야 하겠지요. 신영복 선생도 진선미를 통합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 문학이면서 문학을 또 뛰어넘는 것이고, 뒤집어서 사상이면서 문학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포스트모던이 특히 페미니즘과 매우 친화성이 있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신영복 선생 글을 문학장에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맥락에서 신영복의 글을 놓고 생각해야 마땅하지요. 단순히 문학에 포섭될 성질의 것이 아니고 ‘큰 글, 큰 문학’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바람직한 신영복 선생의 창조력이란 ‘고전의 현대화’에 있다고 봅니다. 보통 전통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신영복 선생은 고전을 통해서 현대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할 때 참고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객관적 과학적 방법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는 문헌연구뿐만 아니라, 덕성수양을 위한 학문으로서 내성과 실천의 방법을 가지고 연구하는 태도가 신영복 선생 글의 지향점인 것입니다.

 

 

우리 미학의 특질

 

우리 미학의 특질에 대해 몇 마디 드리지요. 우리 미학은 은은하고 그윽한 부드러운 곡선의 힘이 에워싸고 있는, 그래서 힘이 바깥으로 발산되는 역동성보다는 안으로 축적되어 잘 보이지 않는 속깊은 힘에 있으며 이는 신영복의 글씨체가 갖고 있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골격은 강인한 소나무를 연상하지만 그것을 근원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버드나무와 같은 부드러움이 차츰 전면으로 나타나는 식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는 그 자체가 민중철학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 글꼴이 지금 어떻습니까? 명조, 고딕, 이건 우리 글씨에 대한 모독이죠. 모두 영어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유홍준 선생도 우리 서체의 뿌리가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신석초라는 시인이 이른바 ‘멋’론을 주장했습니다. 직선보다는 항상 곡선에 멋이 있다는 것이지요. 과도히 움직이지 않는 율동의 상태, 춘풍에 나부끼는 수류垂柳. 석초는 그 최고의 경지를 조선춤에서 찾았습니다. “조선무용의 주요한 일특징은 그 어깨에 있다. 어깨의 후부後部에 있다. 유연히 선회하면서 어깨를 잠깐 올리고 미동의 상태로 흔드는 포즈는 도저히 번역할 수 없는 순수한 멋이다.” 또한 멋을 ‘분장 없는 꾸밈’으로 파악한 형용모순적 표현이 있습니다. 우현 고유섭의 ‘무기교의 기교’론에 연관되어 있는 표현입니다.

 

우리 미학에서 시안詩眼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의 눈동자라고 하고, 또는 백안의 거인이니 영혼의 거주처라는 말도 사용됩니다. 청의 유희재는 시안이란 시의 어느 글자가 좋고, 어느 구절이 뛰어나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전체 시의 주지가 영겨 있는 지점을 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안은 글자 그래도 시의 안목입니다. 단순한 수사적 연자연구煉字煉句의 문제를 넘어서는, 시가 예술의 의경미意境美를 형성하는 핵심처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영복 선생 글의 경우 어느 것을 쪼개서 보지 말고 전체적으로 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시안이 전체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글씨입니다. ‘처음처럼’을 비롯한 여러 글씨들이 그런 측면이 있지요.

 

문학과 관련해 본다면 신영복 선생의 글은 옥중문학, 서간문학, 산문예술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옥중문학에서는 김남주 시인을 비롯해 김동인의 「태형」과 이광수의 「무명」 같은 작품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 있는 점은 옥중문학 가운데 김하기의 작품을 보면 ‘뿌리내리기’라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신영복 선생 글 특유의 ‘식물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생에 대한 우상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신영복이 만들었다고 하는 방식은 금세 바닥이 납니다. 선생 본인도 말씀하셨지만, 역사 속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 토대 위에서 만들고 또 만드는 것이라고 보아야겠지요. 그런 열린 자세와 태도가 신영복을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임규찬  |  문학평론가. 195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성균관대 독문과 및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저서로 『비평의 창』 등 다수가 있으며,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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