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담 밖의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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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담 밖의 뻐꾸기
계수님께



접견

산 속에서 내내 소리만 보내오던 뻐꾸기와 드디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며칠 전 어쩐지 뻐꾸기소리가 유난히 크다 싶었습니다. 20미터나 떨어졌을까. 옥담 밖으로 늘어선 나무들 가운데 우리 방에서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에 뻐꾸기가 와 앉아 있었습니다. 산촌(山村)에서 자라지 못한 나로서는 처음 보는 뻐꾸기입니다. 생각보다는 훨씬 크고 아름다운 새였습니다. 산비둘기만한 몸집과 깃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울음소리에 실려오던 예의 그 구슬픔 따위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어 좋았습니다. 오히려 젊고 여유만만하였습니다. 옆방 사람들까지 불러서 소개하였습니다. 겨우 1분 남짓 먼저 사귀었을 뿐이면서 마치 오랜 친구나 되는 듯 으쓱 자랑스럽습니다.
뻐꾸기는 나의 체면을 세워주느라 때맞춰 두어 번 거푸 소리하고는 이런저런 날갯짓까지 선보여주었습니다. 실은 계수님과 화용 민용 두용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새였습니다. 우리의 접견 시간은 3분, 너무 짧았습니다. 단풍나무 가지만 흔들어놓고 서운하게도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산 속에서 뻐꾸기소리 들려왔습니다. 틀림없이(?) 그 뻐꾸기입니다. 이제는 아는 뻐꾸기입니다. 전보다는 훨씬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들립니다. 소리만으로도 그 모습이 눈앞에 환히 떠오릅니다. 서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신통한 것입니다. 만나지 않아도 통하는 것입니다.
이제 유월, 무성한 잎들이 모여 싯푸른 여름 숲을 만들어내는 계절입니다. 녹음과 철창(鐵窓)을 이어주는 뻐꾸기소리는 올 여름 우리의 무더운 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시원한 벽계수(碧溪水)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운동시간에 서화반 10명 중 6명은 축구를, 4명은 땅탁구를 합니다. 축구에 대하여는 오해를 막기 위하여, 그리고 땅탁구에 대해서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약간의 설명을 드립니다.
우리의 축구란 우선 골문이 하수구 뚜껑이란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1변이 1미터인 시멘트 하수구 뚜껑이 지면에서 15센티미터 정도 꺼져 있는데 여기에 공을 차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장으로 사용하는 주벽(周壁)과 사동(舍棟) 사이의 공지(空地)에는 이 뚜껑 두 개가 맞춤하게도 20미터 정도 상거(相距)하여 있습니다. 담 넘어가지 않도록 바람을 좀 뺀 배구공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들의 경험의 창작임은 물론입니다. 한 팀이 3명씩이므로 '전원 공격 전원 수비' 쉴새없이 뛰어다닙니다.
땅탁구는 탁구라는 이름이 들어 있긴 하나 탁상(卓床)이 없습니다. 땅에 금을 그은 코트에서 모기장으로 만든 네트, 4부 합판으로 만든 배트, 그리고 연식 정구공으로 합니다. 유구(遊球)라는 제법 고상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돼지코에 연지 찍은' 격이고 땅탁구란 이름이 천생 연분입니다. 만약 종로 네거리에서 땅탁구판을 벌인다면 빵(전과) 있는 사람이면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교도소에서 가장 흔한 운동입니다. 저는 요즈음은 축구로 땀을 빼고 있습니다.

 

1988.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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