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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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아버님께


하서와 책, 모두 잘 받았습니다. 아버님께서 탈고하셨다니 무엇보다 경사스럽게 생각됩니다. 원고의 마지막 장에 대미를 적고 붓을 놓으실 때의 그 홀가분함이 흡사 제 것인 양 흐뭇하게 전해져옵니다. 수백 년에 걸친 시대와 사회를 천착하시고 수십 명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해오신 아버님의 노고가 이제 한 권의 단행본으로 곱게 영글어 출간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오늘은 구정입니다. 달력은 29일 밑에다 '민속의 날'이라 적어놓아서 설이란 이름에 담기어오던 민중적 정서와 얼이 빠져버리고 어딘가 박제가 된 듯 메마른 느낌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특식으로 나온 보리쌀이 섞이지 않은 가다[型]밥에다 우내장국으로 아침을 먹었을 뿐 아니라,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얼마큼씩 추렴들을 해서 구매한 빵, 사과, 과자 등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나누어 받은 것들을 걸어놓고 바둑돌 윷놀이(바둑알 4개로 하는 윷놀이)를 벌여 저마다 옥수(獄愁)(?)를 달래기도 합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학산(鶴山) 기슭에는 아침나절 설빔 차려 입은 성묘객들이 일 년 내내 적막하던 묘지를 환히 밝혀놓아 오늘이 설날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난 세모에는 화용, 민용, 두용이 앞으로 엽서에 토끼를 그려보냈습니다만 계수님 편지로 미루어보아 아마 못 받은 듯합니다. 서운한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엽서 한 장이 서울집까지 가는 데 거쳐야 할 관문이 많기도 합니다.
금년 겨울은 의외의 난동(暖冬)이어서 이대로 봄을 맞이해도 괜찮을지 빚진 마음입니다. 곧이어 입춘, 그리고 우수. 다가오는 봄과 더불어 아버님, 어머님의 회춘을 빕니다.

 

1987.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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