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빈곳을 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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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빈곳을 채우며
형수님께


자동차가 대전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형님도 저도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한동안은 이것저것 화제를 찾아내어 애써 무얼 덮어보려 했습니다만 결국 씁쓸히 웃으며 착잡한 마음을 수긍하고야 말았습니다.
잠실집 계단에서 떠나보내시던 형수님과 계수님의 굳은 표정도 아마 이 착잡함을 미리 읽었기 때문이었던가 봅니다.
여러 사람들을 내내 서 있게 했던 저의 1주일 동안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시종(始終)해주신 형수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뿌리고 온 것이 기쁨인지 아픔인지, 바깥이 좁은지 안이 넓은지, 손가락이 차가운지 얼음이 차가운지…….
아직은 쏟아지는 잠, 어수선한 꿈자리가 분별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머지않아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꿇은 삶이 세차게 서로를 흔들어 저를 깨어 있게 해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깨어 있는 정신의 섬뜩함으로써 한 주일 동안의 사람과 일을 간추려 저의 빈 곳을 채우고 제 자신을 달구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용이, 주용이와는 부족했던 대화가 아쉽습니다만 대신 조기축구의 기억이 신선한 감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건강을 빕니다.
잠실에는 따로 편지 드리지 않습니다.

 

 

198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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