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살아 있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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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살아 있는 대화
아버님께


만약 한강에 싱싱하고 정갈한 생수가 가득히 흐르고 있다면 한강변을 살고 계시는 어머님, 아버님께선 다만 그것을 바라보시는 것만으로도 이 가뭄을 훨씬 수월하게 지내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15척의 커다란 화분에 담긴 형상인 교도소의 흙은 수많은 발 밑에서 이제는 고운 고물이 되어 신발을 덮고, 이따금 바람을 타고 먼지가 되어 피어오릅니다. 메마른 땅, 찌는 더위 그리고 각박한 인정을 적셔줄 굵직한 빗줄기가 몹시 기다려지는 계절입니다.
이달 16일(금)에 무기수 생일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교무과에서 별도 통고가 있겠습니다만 이전과 달라 집에서 준비한 음식은 일체 허락되지 않으며 접견인도 3명으로 한정됩니다. 저는 어머님, 아버님께서 더위에 고생하시기보다는 형님이 틈내어 잠시 다녀갔으면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지 시간이 좀 긴 접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위 피하기 겸해서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읽고 있습니다.
은원(恩怨)과 인정, 승패와 무상, 갈등과 곡직(曲直)이 파란만장한 춘추전국의 인간사를 읽고 있으면 어지러운 세상에 생강 씹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자의 모습도 보이고, 천도(天道)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던 사마천(司馬遷)의 장탄식도 들려옵니다. 지난 옛 사실에서 넘칠 듯한 현재적 의미를 읽을 때에는 과연 역사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살아 있는 대화이며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졌다는 잠실아파트의 여름이 어머님께 혹독한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보중(保重)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가뭄과 더위 속에서도 항상 '정신의 서늘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8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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