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속의 닭 '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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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의 닭 '쨔보'
계수님께


창문에서 크게 떼어서 아마 스무남은 걸음 될까. 양재공장 입구를 엇비슷이 비킨 자리에 '쨔보'라는 인도네시아 원산(原産)의 자그마한 닭 한 쌍이 살고 있습니다. 새벽 4시쯤 되면 어김없이 울기 시작하여 이곳에 잠시 산촌의 아침을 만들어줍니다.
이 닭은 양재공장 사람들이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갇힌 사람들이 또 무엇을 가둔다는 것이 필시 마음 아픈 일일 터인데도, 역시 '키운다'는 기쁨은 그 아픔을 갚고도 남는가 봅니다.
나는 운동시간에 그 앞에 지나다 이따금 발걸음 멈추는 한낱 구경꾼에 불과하여 아픔이든 기쁨이든 마음에 담을 처지가 못될 뿐 아니라 책 들고 새벽을 앉았다가 닭 울음에 더러는 글줄 좋이 빼앗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훌륭한 새벽의 친구입니다.
토종 장닭의 길고 우렁찬 목소리에 비하면 아무래도 짧고 가늘어 인공(人工)이 가해진 듯한 그 생김생김과 더불어 불구(不俱)에서 받는 애처로움 같은 것을 자아내기도 합니다만, 이역(異域)의 좁은 닭장 속에서도 제 본분을 저버리지 않고 꾸준히 새벽을 외치는 충직함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슴 한쪽에 그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게 합니다.
버들은 보이지 않고 하얀 버들개지만 날아옵니다. 박토(薄土)에 내리기를 머뭇거리는지 오래오래 5월의 바람 속을 서성입니다. 5월은 어린이의 달, 어버이의 달입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모시는 어버이도 많고 보면 5월은 차라리 '여자의 달'이라 하겠습니다.

 

 

198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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