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으로 날아든 민들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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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으로 날아든 민들레씨
아버님께



배식

교무과에서 통고하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달 18일에 무기수 생일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너무 많은 가족들이 그렇잖아도 바쁜 시간을 내어 먼 걸음을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음식은 지난 접견 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서화반의 여러분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따로 꾸러미를 준비해주시면 편리하겠습니다.
작년 이맘때의 생일연이 어제 일같이 가깝게 기억되는데 그것이 벌써 일 년이나 전의 일이고 보면 저희들은 세월의 흐름에 어지간히 무디어진 것 같습니다. 1, 2년쯤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기를 예사로 여기는 둔감함은 설령 징역살이에 필요한 감각이라 할지라도 좋은 습벽(習癖)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버릇은, 특별히 절실한 일에 쫓기지 않는 데다 또 생활이 단조로워서 다양한 경험을 가질 수 없음에 연유하는 듯합니다. 절실한 일이 없으면 응달의 풀싹처럼 자라지 못하며, 경험이 편벽(偏僻)되면 한쪽으로만 굴린 눈덩이처럼 기형화할 위험이 따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살면서 성격의 굴절을 막고 구김살 없이 되기란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개개인이 각자 자기 완결적인 덕성을 도야해가는 개인주의적 결벽성보다는 나는 이것을, 너는 저것을 갖추어 혼자로서는 비록 인격적으로 빈 곳이 많을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연대성의 든든한 바탕에 인격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사회적 미덕 속에서 개인적 덕성을 완성해가는 쪽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성격적 결함을 두호(斗護)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은 아침 나절 쓰레기장에서 무얼 태우는 매케한 연기내음이 농촌의 5월을 연상케 하더니, 어디선가 민들레씨 한 송이가 방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1979.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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