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얻기 위해서는 벼를 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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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얻기 위해서는 벼를 심어야
아버님께


현묵자(玄默子)의 [순오지](旬五志)에 소개된 건강법에는 일견 건강과는 무연한 양생법(養生法)이 대부분입니다. 이를테면 물욕을 탐하지 말라[淡泊物欲], 머물 줄 알고[知止], 남 모르게 남을 도우며[陰助], 생물을 살해하지 말라[絶勿殺生]는 구절들이 그런 것입니다.
이는 대체로 건강의 개념을 안정, 온화, 평정 등의 정신적 고지(高地)에다 세워, 무병(無病), 정력(精力) 등의 신체적인 건강의 개념을 그 하위에 두거나 그것만으로서의 독립된 의미를 배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영양상태가 양호하다든가 탄력 있는 근육을 단련하는 대신에 욕심을 줄이는 것이 제일[節欲爲上]이라고 가르치며 각종의 냉난방 설비 대신에 춥지 않을 정도로 따뜻이 하고[以不寒爲溫] 한서에 순응함으로써 자연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도록[寒暑順節宜 大道抱天全] 가르칩니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정신과 육체를 상호대립 개념으로 파악한 '건강한 신체 → 건강한 정신'이라는 도식의 도치로 속단되기 쉽습니다만, 적어도 현묵자가 소개한 조상들의 생각은 그 사고의 지반을 달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흔히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고 다시 이 수단을 몇 개의 단계와 요인으로 나누어 계산, 측정하는 등 효과적으로 목적을 실현하려는 경제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로서는 얼른 납득하기 어려운 발상법인지도 모릅니다. 지족(知足), 안정을 얻기 위하여는 지족, 안정을 닦으라는 가르침이 그 형식논리에 있어서는 순환론의 모순과 동형(同形)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이는 쌀을 얻기 위하여는 벼를 심으라는 당연한 이치를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틀린 것은 우리들의 생각, 즉 경제주의적 사고의 타성일 수도 있습니다.
목적과 수단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하고, 목적에 이르는 첩경이나 능률적인 방편을 찾기에 연연하지 않고, 비록 높은 벼랑일지라도 마주 대하고 서는 그 대결의 의지는 그 막힌 듯한 우직함이 벌써 하나의 훌륭한 건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허공을 붙들고 일어날 수는 없고 어차피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듯 지족과 평정을 얻기 위하여 다름아닌 지족과 평정을 닦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굵고 큼직한 사고야말로 그 속에 가장 견고한 건강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듯합니다. 보시선행 사무사(布施善行 思無邪)를 가르치는 현묵자의 양생법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엄한 인간교육임을 알겠습니다.

 

 

197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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