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간 집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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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간 집을 찾으며
부모님께


겉봉에 새 주소를 적었습니다. 저의 엽서도 이제는 수유리의 낯익은 길을 버리고 모르는 아파트의 층계를 오르고 긴 복도를 지나 찾아갈 것입니다. 온 식구들이 치렀을 그 엄청난 수고가 눈에 선합니다.
어른들의 수고와 아무 상관없던 어린 시절에 우리는 이사가 부러웠습니다. 농짝 뒤에서 까맣게 잊었던 구슬이며 연필토막이 굴러나오기도 하고, 신발을 신은 채 대청마루를 걷는 둥 아이들은 부산스런 어른들의 사이를 누비며 저마다 작은 노획자(鹵獲者)가 되어 부지런히 재산(?)을 늘렸던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이사는 낭만과 행운의 신대륙이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후 10여 년 간. 서울이 내두르는 거대한 원심력에 떠밀려나, 묶어서 골목에 내면 더 작고 가난한 생활을 아부시고, 더 먼 외곽, 더 높은 비탈의 세가(貰家)를 찾던 그 잦은 이사는 이를테면 어린 시절에 꿈 키웠던 그 이사의 환멸인 셈이었습니다.
이번의 이사는 물론 그런 것이 아니라 믿습니다. 기해년(己亥年)의 이사처럼 송두리째 고향에서 뿌리를 뽑는, 모든 이웃과 공동체로부터 단절되는 '실향'도 아니며, 더 높은 비탈의 세가로 오르는 '등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원래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 서울살이이고 보면 사람을 떠나는 아픔 같은 것과는 아예 인연이 없는, 단지 일정한 중량과 부피의 역학적 이동이 수고의 대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까이서 자주 들르던 수유리 누님 두 분이 작은 석별이나마 감당해야 할는지……. 출가한 누님이 비록 외인이긴 하지만 혈연의 징검다리를 건너 변함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어머님'은 객지를 사는 누님들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염려는 오히려 번지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업체 같은 고층 빌딩 속에서 대체 어떤 모양의 가정이 가능한 것인지. 아버님께서는 수유리의 산보로(散步路)를 잃고, 어머님은 장독대를 잃어 갈 데 없이 TV 할머니가 되지 않으시는지.
생활의 편의와 이기(利器)들이 생산해내는 그 여유가 무엇을 위하여 소용되는지. 그 수많은 층계, 싸늘한 돌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가 실상 흙으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나 아닌지……. 생각은 사변의 날개를 달고 납니다.
12월 추위도, 다른 모든 고통과 마찬가지로 가을짬에서 바라볼 때보다 정작 몸으로 부딪히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님 무사히 상경하셨으리라 믿습니다.

 

1977.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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