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점묘(點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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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점묘(點描)
부모님께


19일(수)
수요일마다 네 사람은 성경 연구 집회에 가고 밤에는 저와 또 한 사람 두 사람만 남게 됩니다. 교도소 내에 가장 많은 책이라면 아마 기독교 성경일 것입니다.

 

20일(목)
운동 시간에는 세탁공장과 영선공장이 매일이다 싶은 미원내기 권구(拳球; 야구 흉내의 찜뽕) 시합을 벌이는데, 저는 오늘도 심판이었습니다. 심판은 특히 한쪽이 기울 때 공정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21일(금)
오늘은 제3주 금요일. 우리 방의 두 사람이 무기수 생일연에 다녀왔습니다. 한 사람은 30년 만에 고모를 만났습니다. 20일에 부치신 아버님의 송금 받았습니다.

 

22일(토)
2공장(나전칠기공장)에 출장(?), 글씨를 몇 자 써주었습니다. 공장 출장은 미니여행. 그곳에는 공장수(工場囚)들의 인심 후한 글씨 칭찬이 저를 삥 두릅니다.

 

23일(일)
[장끼전], [섬동지전](蟾同知傳)을 읽었습니다. 풍자는 그 자체로 이미 고도의 예술적 형상화라 하겠습니다. 풍자와 골계(滑稽) 뒤에 숨은 조상들의 비판정신이 서슬 푸릅니다.

 

24일(월)
잠시 창가에 서성이며 눈을 쉬다가, 우연히 거미란 놈이 몸피가 배가 되는 벌레를 산 채로 동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우리 방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상당수의 벌레 친구들이 있습니다.

 

25일(화)
아침 나절 한 벼루 가득 먹을 갈았더니 묵향이 공방(空房)에 충만합니다. 오랜만에 대자(大字)를 써보았습니다.

 

호계삼소 석과불식(虎溪三笑 碩果不食).

 

변형(變形, Deformation)은 능소(能小)한 숙련과 능대(能大)한 용단이 적절히 배합될 때 뛰어나오는가 봅니다.

 

26일(수)
오늘 아버님의 하서(20일자) 받았습니다.

 

197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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