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과 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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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과 키움
아버님께


5월 25일부 서한 잘 받았습니다. 귀로에 온양을 들러 현충사 경내를 돌아보셨다는 글월을 읽고 저도 동승한 듯 기뻤습니다.
6월,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제게는 또 피서(避書)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쯤 마침 밀린 일도 끝나고 지킬 약속도 없는, 담배 한 개피 정도의 여가가 나면, 저는 곧잘 그동안 어지러워진 책상 서랍을 쏟아놓고 웬만한 것이면 죄 마당에 내다 태우곤 하였습니다.
도회지 일우(一隅)에서 종이를 태우는 냄새, 이것은 비록 낙엽에다 견줄 수는 없지만, 가지런히 정돈된 서랍의 개운함과 함께 제게는 간이역 같은 작은 휴식의 기억,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창의의 산실' 같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징역살이 속에는 물론 토요일 오후의 그 상쾌한 여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무기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광상(鑛床)이 원시로 묻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思考)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어설픈 '관념의 야적(野積)'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습니다. 섭갹담등(躡屩擔簦) ―짚신 한 켤레와 우산 한 자루 ―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씩 조심해서 하나씩 챙겨넣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취사(取捨)의 작업은 책상 서랍의 경우와는 판이해서 쉬이 버려지지도 쉬이 챙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진왕(秦王)의 금서(禁書)나 갱유(坑儒)의 도로(徒勞)를 연상케 하는 참담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버려야 할 '것', 챙겨야 할 '대상'이 둘 다 서랍 속의 '물건'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인 '소행'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나마 정돈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징역살이라고 하는 욕탕 속같이 적나라한 인간관계와, 전 생활의 공개, 그리고 선승(禪僧)의 화두처럼 이것을 은밀히 반추할 수 있었던 면벽십년(面壁十年)의 명상에 최대의 은의(恩宜)를 돌려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1977.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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