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사명당 연구 아버님께
어제 아버님의 서신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송해주신 신문은 다행히 열독이 허가되면 아버님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아버님께서 몹시 바쁘시다니 참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사명당 관계자료는 계속 모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특히 김응서(金應瑞) 장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수집할 필요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응서는 일병(日兵)의 한국 고승(高僧)에 대한 외경(畏敬)을 이용하여 승병의 궐기가 크게 효과 있으리라는 것을 먼저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행주대첩, 평양탈환 등의 군사적인 역할을 비롯하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간의 알력을 이용하여 적의 내부를 전략적으로 약화시키는가 하면, 임란 후에는 만포진(滿浦鎭)의 만호(萬戶)로 있으면서 중국의 정세, 특히 명 청에 대한 정확한 정세를 보고하여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점 등 그의 역량과 역할은 다대(多大)하였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명당에게 대하여는 항상 그 전략적 지침을 제시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직 원문 해독에는 부족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중국철학사는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비록 그 표현이 단조(單調)하기는 하지만 근대사상의 맹아와 그 뿌리가 역력히 보이는 듯합니다.
아버님께 부탁드린 소사전(小事典)은 천천히 구하시는 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많은 것을 읽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형님, 영석이 모두 건강하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이만 그치겠습니다.
1973.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