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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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일생
어머님께


영석이가 이제 집에 있어서 좀 덜 적적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만을 세가(貰家)에 둔 채, 큰아들은 '딴집살이'를 가고, 둘째아들은 '감옥살이'를 하고, 셋째 녀석은 '직장살이'로 또 어머님 곁을 떠났으니 세 아들이 모두 떠나버린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 위에 출가하여 이미 외인이 된 누님들의 일까지 아울러 생각해보면 '부모의 일생'이란 결국 아들딸을 길러서 어디에다 빼앗기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척에서 조석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치마 끝에 매달리는 어린 시절과는 달리, 점차 장성해서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부모의 영향권을 벗어나버린다는 점에서 이 경우 역시 아들을 빼앗긴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 저를 변호하려 함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를 옳게 세워가는 길이 곧 '효의 도(道)'(孝之終立身揚名也)라고 말씀드리던 제가 어머님의 이해를 받지 못한 채 지금의 처지에 이른 데에 우뚝 생각이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입추에 이은 어제 오늘의 비 뒤끝은 흡사 가을 기색입니다. 그동안 더위를 피하느라고 책을 피해왔습니다. 이를테면 피서(避書)로 피서(避暑)해온 셈입니다. 하기는 평소에도 독서보다는 사색에 더 맘을 두고 지식을 넓히는 공부보다는 생각을 높이는 노력에 더 힘쓰고 있습니다. 은하의 물결 속 드높은 별떨기처럼…….
보내주신 {대학 중용}은 정독하고 있습니다. 처칠의 {2차대전사}는 당분간 더 읽지 않을 생각입니다. 2, 3권은 제가 필요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좀처럼 상심하시지 않는 어머님, 더 강한 어머님이 되어주시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그치겠습니다.

 

197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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