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古詩)와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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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古詩)와 처칠
아버님께


5월은 입하소만(立夏小滿) 절기인가 하면, '신록의 달', '계절의 여왕'이라 명명하기도 합니다. 계절의 표정을 거의 읽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 성(城)에 있어서도 5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참 좋은 달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난 '어머니날'에는 적적해 하실 어머님 생각에 잠시 송구스런 마음이었습니다.
{한국 명인 시집}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선 그 시의 세계가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하다는 사실입니다. 산수, 강촌, 추월(秋月), 백운(白雲), 송(松), 안(雁)…… 등등이 시역(詩域)의 전부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동양화가 산수화인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경향으로서, 이는 이를테면 자연과 전원생활을 상찬(賞讚)함으로써 농촌 사람들의 가난과 고통을 잠시 잊도록 하는 진정제의 역할을 해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난과 고생이 진정의 대상이 아니라 해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한국 고전시도 단지 음풍영월(吟風咏月)에만 멎지 않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에 대한 인간의 협동, 즉 인간관계(사회)를 올바르게 세워나가는 역사적 노력에 의당 한 팔 거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외면해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없지 않으며 한시(漢詩)를 잘 새기지 못하는 제게도 구절 곳곳에 번뜩이는 시재(詩才)가 놀랍기도 합니다.
유명인의 저술을 대할 때 대개 그러하듯이 처칠의 {2차대전사}에서도 저는 몇 가지의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둘을 들어보면, 화려한 단어 또는 기교를 부리는 표현방법 때문에 문맥과 논리가 적잖이 왜곡되고 있으며, 또 자기의 입장이 지나치게 변호되고 있으며 또 자기가 관여한 사건이 불필요한 장소에서 자주 언급되는 등등 전체적으로 무척 소란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느낌은 비단 위에서 지적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사관의 불비(不備)에 더 깊은 까닭이 잠재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하튼 저는 이 책에서 많은 새로운 사실에 접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197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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