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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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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囚衣)에 대하여
계수님께


사복(私服)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을 보면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자기가 입고 있는 수의를 먼저 의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옷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수의를 마냥 한스러워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너무 감상적인 생각입니다. 부러운 마음, 한스러운 마음이 없을 리 없지만 그것은 처음 잠시 동안의 심사일 뿐 그 마음 한 구석에서는 우리들만이 아는 엉뚱한 모의(謀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사복 대신 청의삭발로 바꾸어놓는 상상의 놀이(?)를 즐기는 것입니다. 특히 미운 사람일수록 열이면 열 모두가 이러한 놀이의 대상을 면치 못합니다. 단지 옷만 바꿔 입혀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을 징역 속의 이러저러한 자리에 세워놓고 그때 그때의 반응과 소행을 예상해보기도 합니다. "빠다 고추장 안 나눠먹게 생겼다." "아는 척 되게 하겠다." "물 많이 쓰고 잠자리 투정 깨나 하겠다." "콧지름 잘 바르게 생겼다." …… 거의가 결함을 들추고 험잡는 이야기 일변도인데 그도 그럴 것이 막상 수의를 입히고 나면 결함이 그렇게도 잘 뜨일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놀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악취미이며 부정적인 시선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불만이나 적의에 연유한다기보다 '옷의 허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복이 그 사람의 결함을 덮어주는 것임에 반하여 수의는 그 결함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결정하고 범죄화해버리는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놀이는 수의가 지닌 이러한 역기능에 대한 강한 반발을 그 바닥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수의를 입고 있는 우리들끼리도 처음 대할 때는 영락없는 '범죄꾼'의 첫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취업장이나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 사람의 처지와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그에게서 느끼던 첫인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던가를 뉘우치게 됩니다. 청의삭발이 얼마나 험악한 인상을 만들어내는가를 절감케 합니다. 이처럼 의상과 사람의 괴리(乖離)를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우리들 자신이 아직도 의상의 허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강고한 철갑 외피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사복을 수의로 바꿔 입혀보는 우리들의 놀이는 이러한 의상의 허구를 폭로하고 외피에 싸여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을 드러내려는 우리들의 자존(?)의 노력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일종의 정신적 가학 취미이고 부정의 시선임을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을 즉물적(卽物的)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각종의 처지, 각이한 시점, 다양한 소임에 세워보게 함으로써 인간을 보는 눈을 넓고 깊게 해주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사복을 수의로 바꿔 입히는 놀이에 반하여 다소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수의를 사복으로 입혀보는 상상도 합니다. 청의삭발 대신 그럴 듯한 사복을 입혀 사회의 여러 자리에 세우고 앉혀보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입니다. 이번에는 사복이 결함을 덮어주기보다는 그것을 더 생생하게 들추어냅니다. "고생을 해봐서", "없이 사는 사람들 사정을 잘 알아서", "산전수전 세상물정에 밝아서"…… 등등의 최소한의 긍정적인 면모가 부각되기는커녕 각종의 결함이 투성이로 들추어집니다. "먹물이 없어서", "술버릇 때문에", "욕심이 족제비라", "매너가 후져서", "끈기 없어서", "앞뒤 생각 없이 덤벼서"……. 수많은 결함들이 사복으로 말미암아 더욱 선명하게 폭로되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을 알아버린 후의 옷이란 결국 이런 부수적인 역할밖에 못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들추어지는 결함은 수의가 인상짓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느낍니다. 결함은 분명 결함이되 인간 전부를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결함이며, 극복대상으로서의 결함이어서 흡사 스승의 질책처럼 훈훈한 여운을 동반하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재경이 결혼 축하합니다. 격세(隔世)하여 집안 대소사에 자리 지키지 못해왔기 때문에 처세(處世)해서도 설 자리 마련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꼬마들의 건강과 가내의 평안을 빕니다. 이 비 뒤끝에 이어 쌀쌀한 날씨가 예상됩니다만 대전보다 남쪽이고 보면 대충 2∼3백 리쯤 덜 추우리라 생각됩니다.

 

198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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