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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님의 하소연
계수님께


계수님의 편지 여백에는 썼다가 부치지 않은 계수님의 '하소연'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계수님의 그 하소연이 조금도 염려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한 여유마저 느끼게 합니다. 왜냐하면 계수님의 짤막한 편지를 차근히 읽어보면 그 속에는 심야의 헝클어진 감정이 배어 있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에 그것을 절제하여 '추스려내는' 아침의 밝은 이성이 나란히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게는 계수님에 대한 두 가지 점의 확실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하나는, 계수님에게서 느껴지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그것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는, 계수님 나이에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며 생활 전반에 걸쳐서 좀처럼 꾸밈새를 보이지 않는 언행동정(言行動靜)에서 오는 것으로서 이는 계수님과 나 사이에 있는 동생의 매개(媒介)를 거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건너오는 그런 진실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흔히 자녀들에 대한 과잉보호로 말미암아 아이들의 심성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는 세태와는 한 점 상관도 없이 계수님은 그 흔한 욕심과 부모들의 허영을 시원하게 결별하고 화, 민, 두용이의 어린 세계를 일찌감치 활짝 열어놓은 용단과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계수님의 그러한 일면은 확신과 철학을 가진 '모성'을 느끼게 합니다.
계수님한테서 느껴지는 이 '철학에 의하여 지탱된 소박함'은 비록 지극히 짧은 상면에서 확인된 것이기는 하나 그 바닥에 그만한 온축(蘊蓄)이 없고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수님의 써보내지 않은 하소연이 조금도 염려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다만 내가 읽은 어느 시나리오의 대사 한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려 합니다.
이 구절은 한 여인이 그 사람을 자기의 반려자로 결심하게 된 이유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Because I really conceived that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그 여인은 "그이와 함께라면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그와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우상(偶像)을 깨뜨리고 인간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뛰어난 통찰이며 양심이라 느껴집니다.
이 구절은 물론 그이를 통하여 자기가 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자신의 성장 의지를 뜻하는 것입니다만 관점을 바꾸어본다면 반대로 그이가 자기로 인하여 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보다 넓은 함의(含意)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善)의 본질은 공동선(共同善)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나는 계수님이 넓은 뜻으로 이 구절을 읽어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서도 이를 자기 성장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넓혀나가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리라 믿습니다.
엽서가 작아 오늘은 더 쓰지 못합니다만 설령 무한히 큰 엽서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어린이 놀이터 같은 부담 없는 자리가 마련되면 그때에는 계수님의 하소연도 듣고 나도 지금은 하지 못하고 있는 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986.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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