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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자의 검은 얼굴

   제자백가 중에서 공자 다음으로 그 인간적 면모가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사람이 아마 묵자墨子(BC. 479∼381)일 것입니다.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뚜렷한 까닭은 『논어』가 공자의 대화집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나눈 풍부한 대화가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 장자는 물론이고 맹자나 순자의 경우도 그 인간적 이미지가 공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에 비하여 묵자의 이미지는 대단히 분명합니다. 『묵자』가 대화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면모가 분명하게 보이는 까닭은 묵자는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는 물론이며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층민의 이미지입니다. ‘묵’墨이란 우리말로 먹입니다만, 묵자墨子의 묵墨은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자자刺字하는 묵형墨刑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가墨家란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설령 형벌과 죄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검은색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검은색은 노역奴役과 노동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虛禮와 허식虛飾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節用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工人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입니다.
  
   묵자는 성姓이 적翟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묵적墨翟이라고 한 것은 묵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뜻에서 그것을 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름으로 삼는다는 것은 심상한 것이 아니지요. 나도 오랫동안 수형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정서를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만 묵적처럼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름으로 삼아 공공연히 밝힌다는 것은 그 형벌이 부당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또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언하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반체제적 성격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묵은 성씨라기보다 학파의 집단적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묵자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백성이 국가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지요(民不畏威 則大威至: 『노자』). 당시는 혁명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혁명적 상황에서 묵가는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좌파 조직의 좌파 사상이었으며 묵적이란 이름은 그것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묵墨은 목수의 연장 가운데 하나인 먹줄(繩)의 의미로 읽기도 합니다. 먹줄은 목수들이 직선을 긋기 위해 쓰는 연장입니다. 그래서 법도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엄격한 규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 『묵자』에는 묵자가 방성 기구防城機具(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방어하는 기구)를 만들고 수레의 빗장을 제작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에, 묵자를 공인이나 하층 계급 출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묵자 자신은 그러한 계층 출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묵자의 사상이 하층의 노동 계급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검은색은 이처럼 묵자의 면모를 구체화해줍니다.
  
   둘째로는 근검 절용하며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모습입니다. 검소한 실천가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묵가를 비판하는 글 속에서 쉽게 발견되고 있는데 모든 비판자들의 견해가 이 점에 있어서만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맹자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 사랑(兼愛)을 주장하여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가가 주공周公을 모델로 했다면 묵가의 모델은 하나라의 우禹임금입니다. 우임금은 황하의 치수를 담당하여 장딴지와 정강이의 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신명을 바쳐 일했던 사람입니다.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그냥 지나간 것으로 유명한 임금입니다.
  
   묵가의 검소하고 실천적인 모습은 ‘묵돌부득검’墨칚不得黔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묵자의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굴뚝에 검댕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자신들의 이상적 모델을 유가 모델보다 더 윗대인 우임금에까지 소급하여 설정함으로써 학파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만, 묵가가 유가와는 그 사회적 기반을 달리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묵자는 일찍이 유학에 입문했으나 비유非儒를 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가란 예를 번잡하게 하여 귀족들에게 기생하는 무리라는 것이 묵자의 유가관儒家觀입니다. 우임금의 실천궁행을 모델로 삼은 것은 유가가 모델로 삼고 있는 주周나라의 계급 사회가 아닌 하夏나라의 공동체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묵자는 제자들에게 우임금을 배울 것을 주장하여, 거칠고 남루한 의복도 고맙게 생각하며 나막신이나 짚신에 만족하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것을 근본 도리로 삼도록 가르쳤습니다. 우임금의 길을 따르지 않는 자는 묵가가 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묵가 집단이 이처럼 헌신적 실천을 강조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몸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어 누구나 깡말랐고 살갗 또한 먹빛처럼 검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묵墨이란 별명이 붙었다고도 했습니다. 『장자』에서도 묵가를 평하여 “살아서는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후한 장례 대신 박장薄葬(간소한 장례)에 만족해야 했으니, 그 길은 너무나 각박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묵자는 다른 학파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층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하는 모습이 묵가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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