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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장자』莊子는 6만 5천여 자나 되는 대단히 방대한 책입니다. 『사기』에는 10만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망연합니다만 장자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井底쿳)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외편外篇 「추수」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의 출전입니다. 이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는 장자 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장자가 당시의 제자백가들을 일컫는 비유입니다. 교조敎條에 묶인(束於敎) 굽은 선비(曲士)들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갈一喝합니다.

   물론 당시의 제자백가도 적극적인 실천을 통하여 당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공동체의 문제 즉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문제의식에 있어서 제자백가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자가 추구하는 문제는 더 근원적인 문제였습니다. 제도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입니다.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 ‘인위적 재앙’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거대한 사상적 혼란기였습니다. 사이비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횡행하는 이른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그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 못 되었음은 물론이고 겨우 패권 경쟁을 위한 정책 대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우물을 벗어나지 못한 개구리에 지나지 않으며 여름을 넘기지 못하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장자』 독법입니다. 2천 년을 격한 오늘의 현실 속에서 『장자』를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한다면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과도기는 언제나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오늘날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많은 담론의 와중에서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것이 결국은 패권 경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장자』 독법의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하지요. 『장자』 원문을 읽기 전에 장자 사상의 대강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제1편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舞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사회적 규범 밖에서 자유를 추구하던 일민逸民들의 경물중생輕物重生, 즉 개인주의적인 생명 존중론이 양주학파楊朱學派에서 크게 고조되었는데 이 양주학파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장자』라고 합니다. 철학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은 생명의 물리적 보존이나 생물학적 보존뿐만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라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뜻입니다. 무한한 소요유의 추구를 표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장자의 철학과 사회학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장자』를 읽는 독법이 대체로 ‘소요유’와 ‘자유’의 측면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우리 현대사에 드리워진 어두운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는 기인열전畸人列傳에 들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익숙한 이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나로서는 그분들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공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거명하기 어렵습니다만 기상천외의 기행奇行이나 주사酒邪까지도 그의 호연지기浩然之氣로 치부되거나 불우한 예술가란 이름으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일제하에서부터 해방 전후의 격동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폭압적인 군사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는 실로 엄청난 무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절망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장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탈의 논리로, 패배의 미학으로 읽혀졌음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탈과 농세弄世라는 패배주의자들의 개인주의적 대응과는 달리 역사의 엄혹한 현장에서 산산이 부서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또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과 감옥에서 함께 살기도 했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해금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수용하기에도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역사 현장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패배의 미학이 훨씬 더 친근하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러한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우리의 『장자』 독법이 부정의 철학으로 기울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소요유가 단지 소요를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소요유는 장자의 고차원의 사회 철학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장자』를 부정의 철학으로만 읽는 것은 올바른 독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미도중’曳尾塗中의 일화는 장자의 그러한 면모를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장자가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초楚의 위왕威王이 대부 두 사람을 보내어 재상을 삼으려는 뜻을 전했습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돌아보지도 않고 웃으며 사신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듣기로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천 년이나 되었다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묘당廟堂에 보관한다 합니다. 당신이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하여 돌려보냈다는 일화입니다.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寧生曳尾塗中)는 것이 바로 장자입니다. 부정적이기는커녕 대단히 낙천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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