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의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맹자孟子의 생몰 연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자 사후 약 100년경인 기원전 372년에 태어났다고 하며, 향년 74세에서 84세, 94세, 97세 등 여러 설이 많으나 사전史傳에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대체로 공자 사후 약 100년 뒤에 산동성 남부 추芻에서 출생했으며 이름은 가軻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가 춘추시대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

   춘추시대의 군주는 지배 영역도 협소하고 전통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특히 군주 권력이 귀족 세력들의 제어를 받는 제한 군주制限君主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전국시대의 군주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 군주絶對君主였습니다. 춘추시대에 비하여 국가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국시대는 수많은 나라가 결국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압축되고 드디어 진秦나라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는 과정을 밟습니다. 음모와 하극상이 다반사였으며 배신과 야합이 그치지 않은 난세의 전형이었습니다. 군주는 사방에서 정치 이론에 통달한 학자를 초빙하여 국가 경영에 관한 고견高見을 듣는 것이 상례화되어 조정은 일종의 사교장이었습니다. 맹자도 그중의 한 사람이지만 제자백가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한 학자들의 총칭입니다.

   맹자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물론 다른 모든 사상가의 이해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이러한 시대적 특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맹자가 공자를 잇고 있는 사상가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우리의 강의에서는 공자 시대의 유가儒家 사상이 맹자 시대에 와서 그 중심이 어떻게 이동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인과 의의 차이에 대해서 물론 논의해야 하겠지만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예시 문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맹자』의 제1장에서 맹자가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바로 의義입니다.

   孟子見梁惠王 王曰 풚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梁惠王 上」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뵈었을 때 왕이 말했다. “선생께서 천리길을 멀다 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  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오셨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맹자는 인과 의를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만 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상가입니다. 인과 의의 차이가 곧 공자와 맹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에 비하여 사회성이 많이 담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 예문을 통하여 이 부분을 재론하도록 하지요.
원문이 장문이어서 생략했습니다만, 맹자는 계속해서 자기의 주장을 설파합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大夫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領地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사인士人이나 서민庶民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利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논어』가 선어禪語와 같은 함축적인 글임에 비하여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입니다. 서당에서는 『맹자』로써 문리文理를 틔운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문의 문학적 모범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첫 장의 내용을 끝까지 읽어보도록 하지요.

   만승萬乘의 천자를 시해하는 자는 필시 천승千乘의 제후일 것이고, 천승의 제후를 시해하는 자는 필시 백승百乘의 대부 중에서 나올 것입니다. 일만一萬의 십분의 일인 일천一千을 가졌거나, 일천의 십분의 일인 일백一百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코 적게 가졌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의義를 경시하고 이利를 중시한다면 남의 것을 모두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진(仁) 자로서 자기의 부모를 저버린 자가 없고, 의義로운 자로서 그 임금을 무시한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과 의를 말씀하실 일이지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맹자와 이 대화를 나눈 임금은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입니다. 당시 수도를 안읍安邑에서 대량大梁으로 옮겼기 때문에 흔히 양왕梁王 또는 양혜왕이라 했다고 전합니다. 주자주朱子註에서는 양혜왕은 위나라 제후 앵종으로서 대량에 도읍하고 왕을 참칭僭稱하여 예를 갖추고 폐백을 후히 하며 여러 어진 사람을 초청했는데 맹자도 응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연고로 양혜왕과 대면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맹자의 태도는 의연하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잘 아는 동문의 한 사람으로 최고 수준의 『맹자』 역주서譯註書를 출간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맹자에 대하여 최고의 헌사를 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학자와 사상가로서뿐만 아니라 문장가와 문학가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떠한 고전도 『맹자』만큼 힘차고, 유려하고, 논리 정연하고, 심오한 뜻을 지니고, 현재에도 그 내용이 여전히 타당하며, 사람의 정신을 분발시키는 문장들로 가득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나로서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주장입니다. 사실 『맹자』는 그의 주장과 같이 “문구의 생략과 중복이 절묘하고, 흐름이 경쾌하고 민첩하며, 비유가 풍부하고, …… 어떠한 상대도 설복시킬 정도로 논리가 정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문, 감탄, 부정구否定句 등 문장의 형식도 다양하고 자유자재하여 한문의 문법과 예문의 교범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맹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숙어들의 출전이 바로 이 『맹자』입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농단壟斷, 호연지기浩然之氣, 인자무적仁者無敵, 항산항심恒産恒心 등 이루 다 예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맹자는 조금 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공자 사후 100년경에 활동한 사상가로서 맹자 당시에는 유가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쇠미하여 오히려 묵자墨子와 양자楊子 사상이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맹자는 당시 세상에 크게 떨치고 있던 다른 사상과의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나갑니다. 따라서 『맹자』에는 농가農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 등 당시의 다른 많은 사상이 소개되고, 또 비판되고 있기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단 한 권의 고전을 택하려고 하는 경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연 『맹자』가 천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 제1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하지요. 양혜왕은 맹자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만 셈이지요. 맹자의 사상과 정책은 결국 당시 패권을 추구하던 군주들에게 채용되지 못했습니다. 맹자 사상이 공자의 인仁을 사회화했다고 하지만 당장의 부국강병을 국가적 목표로 하고 있던 군주들에게 ‘사회적 정의正義’는 너무나 우원迂遠한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활적 경쟁에 내몰리고 있던 군주들에게 정의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양혜왕이 말했던 이利란 오로지 ‘부국강병의 류類’였던 것이지요(王所謂利 蓋富國强兵之類). 오늘날로 말하자면 의義란 국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정책 제안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