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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惟恐不傷人 函人惟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孔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焉得智
   夫仁天地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不仁 不智 無禮 無義 人役也
   人役而恥爲役 由弓人而恥爲弓 矢人而恥爲矢也
   如恥之 莫如爲仁
   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公孫丑 上」

   이 장에서는 성선설을 다른 각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성선설의 의미를 온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첫 구절에서 모든 사람은 선하다는 그의 성선설이 표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여 어찌 그가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不仁하겠느냐(矢人豈不仁於函人哉)며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이 그 인仁에 있어서 같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에서는 사람의 소위所爲, 즉 하는 일에 따라서 그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입장에 따라 그 생각과 정서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인간 본성의 사회적 존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선性善이란 어떤 경우에나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術)에 따라 달리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본성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공자의 ‘성상근性相近 습상원習相遠’과 같은 의미입니다. 본성은 서로 차이가 없지만 습관에 따라 차츰 멀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그의 저술에서 공자를 29회나 인용하여 기본적으로 공자 사상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맹자가 공자의 인仁을 사회화했다고 하는 까닭은, 공자의 인이 인간관계의 개념이고 인간관계가 결과적으로 사회적 내용을 갖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인은 의에 비해 사회적 성격이 약한 개념이라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 장의 내용이 그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맹자의 술術(직업, 기술, 생업)은 공자의 습習(습관)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습보다는 술이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습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술은 개인이 처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며 개인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예문을 읽으면서 좀 더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여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不仁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만 화살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갑옷이 화살에 뚫려서) 사람이 상할까 봐 걱정한다. 무당巫堂과 장인匠人도 역시 그러하다(무당은 당시 의사였기 때문에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을까 걱정하고, 장인은 관棺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아서 관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므로 기술(職業)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에 거居하는 것이 아름답다. 스스로 택해서 인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가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맹자의 사회적 관점을 비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공자의 ‘이인위미’里仁爲美를 인용하여 어진(仁)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진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인里仁이란 인仁에 거居하는 것이라고 직역했습니다만 인仁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앞에서 이야기했는데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맹자는 그 사람의 사상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본성도 사회적 입장에 따라서 재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성을 어떤 순수한 본질로 이해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닐 수 없지요. 선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사회성을 띠고 있는 것이지요.

   이 장은 본성으로서의 성선性善의 문제도 처지와 입장이라는 사회적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입장을 여기서는 기술이나 직업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 실천의 문제로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위의 내용을 강조하는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仁이란 하늘이 내려준 벼슬이며, 사람의 편안한 거처이다.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인을 행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며, 무례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는다. 남의 부림을 받으면서 남의 부림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마치 활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드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열심히 인을 행하는 것만 못하다. 인이라는 것은 활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쏘는 법이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과녁에 맞지 않은 까닭을)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인仁의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대체로 위에서 주장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에서 특히 활 쏘는 예를 들어 자기 반성을 이야기하는 맹자 특유의 비유가 매우 공감이 갑니다. 아마 어릴 때 활터에서 활 쏘는 광경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활터가 우리들의 놀이터와 가깝기도 하였고 활 쏘는 사람 중에 친구의 부친도 있었으며 또 우리 집에서 인사를 드린 분도 있어서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하였지요. 곱게 차려입은 여자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만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없었을 때는 우리들이 고전기告傳旗를 흔들어서 과녁에 살이 꽂히는 위치와 화살이 날아간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화살을 주워서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궁술弓術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활 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두 발을 딛는 자세와 어깨와 팔의 각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흉허복실胸虛腹實이라 하여 가슴은 비우고 배는 든든히 힘을 채워야 하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활을 쏘는 동작 전체에 일관된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동작과 동작 사이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서로 휴지休止 없이 정靜과 동動으로 유연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종횡십자縱橫十字를 이루면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도弓道에서 이러한 것들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궁도란 것이 살을 과녁에 적중시키는 단순한 궁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과정과 자세의 정진正眞 여부가 중中, 부중不中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중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와 철학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이것은 모든 운동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내부에서 찾는가 하는 세계관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계는 끊임없는 운동의 실체이며, 그 운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 문제입니다. 반대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결국 초월적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초월적 존재를 만든 어떤 존재를 또다시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삶의 자세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의 작은 실수도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바깥이란 남이기도 합니다. 내가 붓글씨를 쓰다가 전화벨 소리 때문에 글씨를 틀려버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마저도 돌이켜보면 원인은 전화벨 소리가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지요. IMF 사태는 어떻습니까? 국제 금융자본의 작전과 담합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작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허약한 경제적 구조에 대해 반성해야 하는 것이지요. 식량, 에너지, 기술, 원료, 시장 등 자립적 기반이 없는 취약한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3공의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지요. 해방 전후의 권력구조와 경제구조의 창출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지요. 당연히 일제의 식민지 경제구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자세란 IMF 사태에서 우리의 종속적이고 비자립적인 구조를 먼저 보는 것이지요. 물론 친인소연親因疎緣을 다 아울러야 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인因을 미루어놓고 먼 연緣을 먼저 보는 것은 사태를 그릇되게 보는 것이지요. 사활적 공세를 전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패권주의와 그러한 세계 경제체제의 중하위권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의 경제적 위상을 아울러 보아야 하겠지만, 반구제기는 우리를, 나를, 내부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운동의 원인은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자기반성自己反省이 자기 합리화나 자위自慰보다는 차원이 높은 생명 운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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