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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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물론 민간에서 불려지는 노래를 수집하는 까닭은 이러한 진실의 창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채시관들이 조직적으로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악여정통’樂與政通이라는 것이지요.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오늘의 서울에 와서 음악을 듣고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모시毛詩에서는 “위정자爲政者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초상지풍 초필언’草上之風草必偃,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는 것이지요. 민요의 수집과 『시경』의 편찬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백성들 편에서는 노래로써 위정자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지 않을 수 없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를 보이지요. ‘초상지풍 초필언’ 구절 다음에 ‘수지풍중 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을 대구로 넣어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이라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경』에는 이와 같은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큰 쥐」(碩鼠)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섬겼건만 너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나라로 가리라.
   착취가 없는 행복한 나라로. 이제 우리의 정의를 찾으리라.

  매우 직설적이고 저항적입니다. 그러나 「박달나무 베며」(伐檀)는 고도의 문학성과 저항성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절만 소개하지요.

   영차 영차 박달나무 찍어내어 물가로 옮기세.
   아! 황하는 맑고 물결은 잔잔한데
   심지도 거두지도 않으면서 어찌 곡식은 많은 몫을 차지하는가.
   애써 사냥도 않건만 어찌하여 뜨락엔 담비가 걸렸는가.
   여보시오 군자님들 공밥일랑 먹지 마소.

  『중국역대시가선집』의 서문에서 밝혔습니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중국 시가의 전통이 잘못 소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선 사회의 지배 계층인 양반의 시각과 계급적 입장에 의하여 시가 선별적으로 소개되어왔다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시경』에는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저항시와 노동요가 대단히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풍영월이 시의 본령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편향된 여과 장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통과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매우 귀중한 정신세계가 왜곡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세계와 시적 정서, 나아가 시적 관점은 최고의 정신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시경』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진정성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시와 『시경』에 대한 재조명은 당연히 이러한 사실성과 진정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성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분열된 정서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 자신의 삶과 정서를 분절시켜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 가상 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정직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분열된 우리들의 정서를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유력한 관점이 바로 시적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卽物的이지 않습니다.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이 연탄이란 하나의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연탄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봅니까? 안도현의 시는 이러한 내용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정호승의 시에 「종이학」이 있습니다. 비에 젖은 종이는 내려놓고 학만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길러야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아마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설 읽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많은 글들을 읽고 나서 생각하면 핵심적인 요지는 시 한 편과 맞먹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는 읽는 시간도 적게 들고 시집은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시를 많이 읽기 바랍니다.
물론 오늘의 현대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요. 시인이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기초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감수성이 주로 도시 정서에 국한되어 있는 협소한 것이라는 것도 문제이지요. 시인은 마땅히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도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 경험 세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정국에서 대단한 문명을 떨친 임화林和라는 시인이 있었지요. 「네거리 순이」, 「적기가」 등 많은 시가 애송되었습니다만, 임화는 항상 두보 시집을 가지고 다녔다고 전해지지요. 임화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인들 대부분은 문학적으로 호흡하는 세계가 매우 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는 모시서毛詩序의 구절을 소개했습니다만 이 구절이 김수영의 시에 계승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김수영의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의 이미지가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의 핵심은 바로 한 송이 국화가 피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서리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는 광활한 시공간적 연관성에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시상이 백낙천白樂天의 「국화」菊花에 있지요. “간밤에 지붕에 무서리 내려 파초 잎새 꺾이고 연꽃은 시들어 기울었다. 오직 동쪽 울타리의 국화만이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금빛 꽃술 환히 열고 해맑게 피어난다”(一夜新霜著瓦輕 芭蕉新折敗荷傾 耐寒唯有東籬菊 金粟花開曉更淸)는 내용입니다. 「국화 옆에서」는 시상의 핵심을 여기서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누가 누구를 모방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개인적 세계를 열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자기의 좁은 체험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시경』의 세계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짓 없는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매몰되고 있는 허구성입니다. 미적 정서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시경』은 황하 유역의 북방 문학입니다. 북방 문학의 특징은 4언체四言體에 있고 4언체는 보행 리듬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노동이나 생활의 리듬으로서 춤의 리듬이 6언체인 것과 대조를 보입니다. 『시경』의 정신은 이처럼 땅을 밟고 걸어가듯 확실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삶의 진정성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발이 땅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지향해야 할 확실한 방향을 잃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에 담겨 있는 사무사思無邪의 정서가 절실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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