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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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과 벗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學而」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여러분도 알고 있는 「학이」편學而篇에 있는 『논어』의 첫 구절입니다. 여러 가지 번역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구字句 해석에 관한 몇 가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구절에 담겨 있는 사회적 의미를 읽어야 합니다. 춘추전국시대가 종래의 종법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기 이전의 과도기였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것과 관련된 내용이 우선 눈에 띕니다.
'학습’이 그것입니다.

   학습은 그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의 학습이 적어도 수능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노예제 사회에서는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수기修己는 물론이며 치인治人도 학습의 대상이 아닙니다.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학습이 갖는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학습에 대한 언급이 『논어』 첫 구절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 변동기임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물론 “기쁘지 않으랴”라고 공자 자신의 개인적 심경의 일단을 표현하는 지극히 사적인 형식으로 개진되고 있습니다만, 학습에 대한 언급은 사회 재편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비슷한 예가 다음 구절에도 있습니다. ‘붕’朋의 개념입니다. 붕은 친우親友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친우라는 것은 수평적 인간관계입니다. 계급사회에는 없는 개념입니다. 같은 계급 내에서는 물론 존재할 수 있습니다만 멀리서 벗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분제를 뛰어넘은 교우交友에 의미를 두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붕은 수평적 인간관계이며 또 뜻을 같이하거나 적어도 공감대가 있는 인간관계를 의미합니다. 공자의 학숙에는, 초기에는 천사賤士의 자제가 찾아왔으며 후기에는 중사中士의 자제도 입학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더라도 붕의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 역시 사회 재편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다는 마지막 구절의 의미입니다. 공자는 식읍食邑을 봉토로 받는 대부가 되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러한 신분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녹祿을 받는 사士, 즉 피고용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퇴하여 결국 사설 학원 원장으로 일생을 끝마치게 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라는 1인칭 서술은 물론 공자 자신의 달관의 일단을 피력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이러한 술회가 공자학단의 역사적 책무에 관한 소명 의식을 천명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그러한 달관이 사회적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가치’에 대한 언급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습’習에 관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습’을 복습復習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습’의 뜻은 그 글자의 모양이 나타내고 있듯이 ‘실천’實踐의 의미입니다. 부리가 하얀(白) 어린 새가 날갯짓(羽)을 하는 모양입니다. 복습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쁜 것이지요. 『논어』에는 이곳 이외에도 ‘습’을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할 곳이 더러 있습니다. 같은 「학이」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도 매우 잘 알려진 것입니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 不忠乎
   與朋友交而 不信乎 傳不習乎

   증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매일 세 가지(또는 여러 번)를 반성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되 그것이 진심이었는가를 반성하고, 벗과 사귐에 있어서 불신 받을 일이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전불습호’傳不習乎가 나옵니다만 이 경우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성현의 말씀(傳)을 복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고, 잘 알지 못하는 것(不習)을 가르친다(傳)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을 “전傳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不習) 있지는 않은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言 행行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당시에도 하나의 사회적 유형으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장老莊이나 한비자韓非子의 책에는 도처에 공리공담空理空談을 일삼는 부류들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時의 의미도 ‘때때로’가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성숙한 ‘적절한 시기’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 실천의 시점이 적절한 때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時는 often이 아니라 timely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이처럼 사회 변동기에 광범하게 제기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입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문안을 통해 다시 확인되겠지만 『논어』는 인간관계론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인간관계에 관하여 깊이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회의 본질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사실만은 여러분과 합의해두고 싶은 것이지요.

   여러분도 각자 사회에 대하여 다양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집합으로 사회를 이해하기도 하고, 하나의 유기체 또는 건축적 구조로 규정하기도 하고 생산관계, 정치 제도, 문화기제, 소통 구조 등 여러 가지 개념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이 모든 개념은 제도와 인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제도와 인간이라는 두 개의 범주가 인간관계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사회는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인간관계의 사회적 존재 형태가 사회 구성체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인간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지요.

   사회 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논어』에서 우리가 귀중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입니다.

   어느 기자로부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자본론』資本論과 『논어』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기자가 매우 의아해했어요. 이 두 책이 너무 이질적인 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두 책은 다 같이 사회 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동질적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급 관계는 생산관계이기 이전에 인간관계입니다. 자본 제도의 핵심은 위계적인 노동 분업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산자에 대한 지배 체제가 자본 제도의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론은 물론 변혁 이론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지만 생산자에 대한 지배 권력이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에 의하여 행해지든, 사회주의 사회의 당 관료에 의해 행해지든 본질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지요. 그리고 제도의 핵심 개념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사실이지요.

   그런 점에서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 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 혁명 또는 경제 혁명이나 제도 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線型的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不可逆的 구조 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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