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이 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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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이 되지 말아야

 
   君子不器        ―「爲政」

   이 구절의 의미는 대단히 분명합니다. 여러 주註에서 부연 설명하고 있듯이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가 정해져서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器者 各適其用 而不能相通)입니다. 어떤 그릇은 밥그릇으로도 쓰고 국그릇으로도 쓴다고 우길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 그릇(器)의 의미는 특정한 기능의 소유자란 뜻입니다.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 군자의 품성에 관한 것이며 유가 사상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기도 합니다. 또 이 구절은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를 논하면서 바로 이 『논어』 구를 부정적으로 읽음으로써 널리 알려진 구절이기도 합니다. 베버의 경우 기器는 한마디로 전문성입니다. 베버가 강조하는 직업윤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전문성에 대한 거부가 동양 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입니다. ‘군자불기’君子不器를 전문성과 직업적 윤리의 거부로 이해했습니다. 분업을 거부하였고, 뷰로크라시(官僚性)를 거부하였고, 이윤 추구를 위한 경제학적 훈련(training in economics for the pursuit of profit)을 거부하였다고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양 사회가 비합리적이며 근대사회 형성에서 낙후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막스 베버의 논리가 자본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전제하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논리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이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을 동력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재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뛰어넘고 그것의 대안적 모색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바로 그 점과 관련하여 이 구절을 재조명하고 싶은 것이지요.

   오늘날도 전문성을 강조하기는 막스 베버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성은 바로 효율성 논리이며 경쟁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것이지요. 자본가는 어느 한 분야에 스스로 옥죄이기를 철저하게 거부해왔던 것이지요. 오늘날의 대자본이 벌이고 있는 사업 영역을 점검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크게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으로 작게는 다각적 경영, 문어발 확장이 그런 것이지요.

   전문화는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아래층에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차를 전문적으로 모는 사람, 수레바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배의 노를 전문적으로 젓는 사람 등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였습니다. 귀족은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육예六藝를 두루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모두 익혀야 했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들은 시도 읊고 말도 타고 활도 쏘고 창칼도 다루었습니다.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를 두루 익혀야 했습니다. 고전, 역사, 철학이라는 이성理性뿐만 아니라 시서화와 같은 감성感性에 이르기까지 두루 함양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공자의 전기前期 유가 사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은 ‘군자불기’ 역시 노예주 귀족들의 사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한 개의 기器나 ‘부분적이고 하찮은 기예’(末葉小道)는 소인들의 것이라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군자불기’가 이처럼 비록 군자학君子學으로 거론된 것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전문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담론이 바로 2천 년 전의 노예 계급의 그것으로 회귀하는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논어』의 이 구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의 비인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절로 읽는 것이 바로 오늘의 독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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