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이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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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탕이 아름다움입니다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八佾」
   자하가 (『시경』 위풍衛風 「석인」碩人 구절의 뜻을 공자에게) 질문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은 소素를 한 다음에 그리는 법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를 갖춘 다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가(商) 나를 깨우치는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이 대화의 핵심은 이를테면 미美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소와 보조개와 검은 눈동자 같은 미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인간적인 바탕이 참된 아름다움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글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소素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소의 의미는 인간적 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품성이란 바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도야되는 것이며 인간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조형성造形性과 품성에 관한 논의는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조형성이 미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고 승인하는 경우에도 그 조형성에 대한 평가 기준이 문제가 됩니다. 그 시대의 조형미는 그 시대 특유의 미감美感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스타와 우리 세대의 스타가 조형성에 있어 차이가 있는 까닭이 그런 것이지요. 얼굴 생김새가 미인이기 때문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의 사상이 인간적인 매력이 되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미인론의 일환으로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素와 예禮와 인간관계에 관한 논의입니다.

   대체로 미인은,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다소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입니다. 흔히 ‘공주병’이라고 하는 증세들이 그런 것이지요. 미인은 대체로 자신에 대한 칭찬을 미리 예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칭찬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상했던 칭찬이 끝내 없는 경우에 무척 서운한 것은 물론이지만 반면에 예상대로 칭찬을 받는 경우에도 그 칭찬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특별히 감사할 필요가 없지요. 이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 개인이 책임짐으로써 끝나는 느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기의 미모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하여 사람을 분류하고 그러한 평가가 사람과의 관계 건설에 초기부터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지요. 더욱이 정작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경우에 나타납니다.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소위 꽃으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존재론과 관계론의 차이입니다.

   현대는 미의 기준이나 소위 미모가 획일적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미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고 반대로 스스로 미인이 아니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졌습니다. 미인의 사회적 의미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미인론을 펼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미를 상품화하는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과장되기도 합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상품미학에 이르면 미의 내용은 의미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됩니다. 디자인과 패션이 미의 본령이 되고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은 주목되지 않습니다.

   미美는 글자 그대로 양羊 자와 대大 자의 회의會意입니다. 양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양은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생활의 물질적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고기는 먹고, 그 털과 가죽은 입고 신고, 그 기름은 연료로 사용하고, 그 뼈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양은 물질적 토대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양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바라볼 때의 심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 흐뭇한 마음, 안도의 마음이 바로 미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언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 이것은 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소위 상품미학의 특징입니다. 오로지 팔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상품이고 팔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상품입니다. 따라서 광고 카피가 약속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 소비 단계에서 허구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 허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리고 디자인의 부단한 변화로서의 패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결국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이 상품미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아니라 모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되어버리는 거꾸로 된 의식이 자리 잡는 것이지요. 이것은 비단 상품미학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주변부의 종속 문화가 갖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중심부로부터 문화가 이식되는 주변부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미의 문제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우리가 미의 문제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미인론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미의 본령을 그 외적 형식으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로 되돌려놓는 이 『논어』의 대화는 매우 뜻 깊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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