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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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고전 강독은 처음 공자와 노자를 중심으로 했습니다. 『논어』와 『노자』가 동양 사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의가 거듭되면서 본의 아니게 조금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학파 간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도 나오고 또 때에 따라서는 서로 대비해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묵자』墨子에 대해서도 언급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불교佛敎와 신유학新儒學의 기본적 성격에 대해서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시하는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따로 장을 내어 다루게 되었습니다. 따로 장을 내어 다룬다고 하지만 범위가 늘어나는 만큼 각 장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개요만 소개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이 매우 곤혹스러웠습니다. 표면만 스치고 지나가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의 강의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곤혹스럽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진행하는 강의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그런 점을 미리 양해해야 합니다. 강의 내용을 좁혀서 한 학파로부터 한 개의 주제만 읽어내자는 것이지요. 그것 또한 무리입니다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함께 읽으려고 하는 『묵자』, 『순자』, 『한비자』 등은 비주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가墨家는 유가儒家와 함께 당시에는 현학顯學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비주류로 물러났습니다만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주류 학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 역시 유가라는 점에서 주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입니다. 천하 통일을 주도한 사상이란 점에서 법가를 비주류라고 하기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 『순자』, 『한비자』가 중국 사상의 전체 흐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비주류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주류 사상, 비주류 사상이라는 구분과 관련하여 잠시 사상 일반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상은 자각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자각적이라는 의미는 개인을 그 사상의 담당자로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의 개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상의 담당자로서의 개인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각적 체계로서의 사상과 그 사상의 담당자로서의 개인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기보다는 사상의 사회적 존재 양식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의 묵자와 순자, 한비자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요. 사상은 개인에 앞서서 반드시 ‘사상적 과제’가 먼저 존재합니다. ‘누구의’ 사상이기에 앞서 반드시 ‘무엇’에 관한 사상이게 마련입니다.
  
   사상이란 일정한 사회적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이지만 그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상도 사상사思想史의 장場으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상을 사회 역사 속에 해소시킬 수 없는 이유가 방금 이야기한 그 자각적 체계 때문입니다. 자각적 체계 때문에 사상 자체로서의 독자성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독자성은 역시 제한적 의미로 이해하는 태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독자성에 앞서 시대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시대가 사상을 낳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학파 간의 차이는 그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학파 간의 차별화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학파 간의 침투가 진행되는 것이 사상사의 일반적 발전 과정입니다.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침투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과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각 학파가 전개하는 논리적 정합성은 당대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지적 수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학파 간의 차이는 접근로와 강조점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주류 사상이든 비주류 사상이든 결국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합의해두려고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부터 다루게 되는 『묵자』, 『순자』, 『한비자』 등에 대해서는 그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강조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 학파마다 한 개씩의 주제만 찾아내자고 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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