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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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워야?

   우리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묵자의 반전 평화론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 물들어 있는가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 곧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추구했던 부국강병의 과정을 반복한 것이 사실이지요.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처참한 죽음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살리는 자본 축적의 돌파구가 되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29년의 세계공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의 처방 때문이 아니라 2차 대전이라는 전시경제戰時經濟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2차 대전의 엄청난 파괴가 최대의 은인恩人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입니다.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 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冷戰이든 열전熱戰이든 항상 전쟁에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황이 반복되어왔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전쟁사戰爭史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묵자』의 「비공」편은 전쟁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의식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허위의식을 반성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현재성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묵자는 「비공」편의 결론으로 대국이 소국을 공격하면 힘을 합해 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들이 서로 교상리交相利의 국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 구조야말로 전쟁을 막고, 신의와 명성을 얻고, 천하에 엄청난 이익을 만드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 그것이 바로 국가 간의 교상리 구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묵자는 단지 반전 평화를 주장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평화 구조를 제도화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상가들과 구별되는 묵자 특유의 경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펑유란馮友蘭은 묵가 사상이 하층 계급과 무사武士 계층의 직업적 윤리를 이론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묵가는 무사 출신의 훈련된 군사적 집단이고, 묵자는 초대 거자鉅子이며, 거자는 생살권生殺權이라는 군권軍權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물론 묵가에는 엄격한 조직 규율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말(言)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으며, 한번 승낙하면 반드시 성실하게 이행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뛰어드는 것이 묵가의 조직 규율입니다(其言必信 其行必果 其諾必誠 不愛其軀 赴士之厄困).
   묵가에게는 무사 집단의 윤리 또는 유협遊俠의 의리가 계승되고 있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에서 묵가는 이들과 구별됩니다. 공격 전쟁 즉 공전攻戰을 철저하게 반대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공수」편公輸篇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공수반公輸盤이라는 명장名匠이 초왕楚王에게 초빙되어 운제雲梯라는 공성 기구攻城機具(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제작했습니다. 초나라는 그것을 이용하여 송宋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묵자가 제나라를 출발하여 열흘 낮 열흘 밤을 달려가서 초나라로 하여금 전쟁을 단념하게 합니다.
   이 「공수」편에는 묵자와 공수반과 초왕이 논전을 벌이는 광경이 소설적 구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전 논리도 돋보이지만 전쟁을 막기 위한 묵자의 성실한 태도가 더욱 감동적입니다. 묵자가 반전 논리로 초나라의 침략 의도를 저지할 수 없게 되자 초나라의 공격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단언합니다. 결국 묵자와 공수반의 도상 전쟁圖上戰爭이 연출됩니다. 일종의 모의 전쟁입니다. 허리띠를 끌러 성을 만들고 나무 조각으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공수반이 공성 방법을 바꾸어 아홉 번이나 성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아직도 방어술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공방攻防 시범에서 공수반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내게는 선생을 이기는 방법이 있으나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초왕이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은 공수반이 아니라 묵자가 했습니다.
“공수반의 말은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면 송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의 제자들은 금활리禽滑釐 이하 300명이 이미 저의 방성 기구를 가지고 송나라의 성 위에서 초나라 군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저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묵자는 기어코 초나라의 송나라 침략을 저지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그 뒤에 이어집니다. 묵자가 돌아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비가 내려서 묵자는 마을 여각閭閣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묵자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송나라를 위하여 열흘 밤낮을 달려가 초나라의 침략을 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를 박대했습니다. 「공수」편 마지막에 첨부되어 있는 다음 구절이 그것입니다.

   止楚攻宋 止楚攻鄭 阻齊罰魯
   墨子過宋天雨 庇其閭中 守閭者不內也
   故曰 治於神者 衆人不知其功 爭於明者 衆人知之        ―「公輸」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고,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저지하였으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다. 묵자가 송나라를 지날 때 비가 내려서 마을 여각에서 비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문지기가 그를 들이지 않았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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