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상 게시판

청구회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처음처럼
이미지 클릭하면 저서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의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고전 독법에서 문명 독법으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관계론의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담론이었습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人은 인仁으로 나아가고 인仁은 덕德으로 나아가고 덕은 치국治國으로 나아가고 치국은 평천하平天下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천하는 도道와 합일되어 소요하는 체계입니다. 인성은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대의 아픔을 주입함으로써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사회, 좋은 역사와 함께 만들어지는 것임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성의 고양은 그런 뜻에서 ‘바다로 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구적 가치가 개인의 존재성을 강화하고 개인의 사회적, 물질적 존재 조건을 확대하고 해방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구별됩니다. 서구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보다는 개인의 존재 조건을 고양하는 것이며 그 존재 조건들 간의 마찰과 충돌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강의가 고전 독법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이 일관되게 관철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대단히 편의적인 관점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실천적 과제와 유리되어 진행되기도 했다는 반성을 금치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 강의를 다시 재조명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검토와 재조명이 끊임없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바다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고전 독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독법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근대성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는 문명사적 과제와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기 때문에 다시 부연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물질의 낭비와 인간의 소외, 그리고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보다 근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 당면한 문명사적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민화愚民化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상품 문화商品文化의 실상을 직시하는 것에서 비판 정신을 키워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비판적 성찰이 새로운 문명에 대한 모색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판적 성찰이 단지 성찰에 그치지 않고 근대사회의 존재론적인 구조에 대한 철학적 체계로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체계적인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였을 경우에야 비로소 우리 삶의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감염 부위를 수시로 발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우리의 시각을 ‘여기의 현재’(here and now)에 유폐시키지 않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친 전체적 조망과 역사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 집단, 국가 등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존재를 강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진력해왔던 강철鋼鐵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고전의 독법에 있어서는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을 얻었다면 마치 강을 건넌 사람이 배를 버리듯이 고전의 모든 언술言述을 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로소 고전 장구古典章句의 국소적 의미에 갇히지 않고 그러한 관점을 유연하게 구사하여 새로운 인식을 길러내는 창신創新의 장場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며, 동시에 내일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고전 강독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과제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창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창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따라서 창신의 장에서는 개념과 논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여러분에게 과제로 남기는 시와 산문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7 11. 강의를 마치며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
6 11. 강의를 마치며 도전과 응전
5 11. 강의를 마치며 『대학』 독법
4 11. 강의를 마치며 『중용』 독법
3 11. 강의를 마치며 이학理學에 대한 심학心學의 비판
» 11. 강의를 마치며 고전 독법에서 문명 독법으로
1 11. 강의를 마치며 가슴에 두 손
Board Pagination ‹ Prev 1 Next ›
/ 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