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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道는 자연을 본받습니다

 
   중국 사상은 지배 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老莊 사상이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지배 담론과 비판 담론이 일정한 길항拮抗 구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유가와 노장이라는 두 축은 중국 사상사의 오래된 심층 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노자』老子는 그 두 개의 축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앞으로 예시문을 통하여 확인되리라고 생각하지만 동양 사상의 정체성은 『논어』論語보다는 오히려 『노자』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진’進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進)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歸)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自然입니다. 노자의 귀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은 노자를 한 편으로 하고 여타의 모든 학파를 다른 한 편으로 하는 두 개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물론 여러 층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대체로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정책적 대응을 본령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노자는 다른 학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반대합니다. 인위적 제도나 규제는 당시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책이 되지 못하며 도리어 혼란과 불의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기본적 입장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제도와 문화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생성과 변화 발전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부터 언어와 인식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자는 철저하리만큼 근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적이라는 의미는 인간과 문화와 자연에 대한 종래의 통념을 깨트리고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25장)의 논리가 그것이지요. 여기서 법法은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체계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노자』의 체계에 있어서는 자연의 생성 변화가 곧 도道의 내용입니다. 인위적 규제는 이러한 질서를 거역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을 불로 지지고, 말굽을 깎고, 낙인을 찍고, 고삐로 조이고, 나란히 세워 달리게 하고, 마구간에 묶어두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적 가치는 인위적 재앙으로 보는 것이지요. 자연을 카오스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는 근본적으로 반문화적反文化的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 의지建築意志에 대한 비판입니다. 계몽주의든 합리주의든, 기존의 인위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건축적 의지를 해체해야 한다는 해체론이며 바로 이 점이 노자의 현대적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결국 법가法家 사상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 사상계의 통일도 당연히 뒤따르게 됩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도 그러한 사상 통일의 일환입니다. 유묵儒墨 논쟁이나, 유법儒法 논쟁은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통일의 주역인 법가 사상은 난세亂世를 평정하는 과정에서는 대단한 역동성을 발휘했지만 치세治世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적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법가적 정책이 그 역량을 결집하고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가동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진정한 부국강병을 만들어내는 데는 적합하지 못하게 됩니다. 진정한 부국강병이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부문의 자생력自生力을 길러내고 꽃피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장기적인 재생산성을 법가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 당시의 현학顯學이었던 묵가墨家 역시 진한秦漢의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성립되고 그 체제가 정비되면서 묵자 사상의 핵심인 평등 이념이 그 사회적 지반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사상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한漢 이후 유교가 관학官學으로 자리 잡음에 따라 제자백가의 사상은 이제 유가 사상에 흡수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리하여 유가 사상이 지배층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유가 사상은 법가에 비하여 비폭력적 지배 방식을 취하고 피지배층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매우 유화적宥和的인 정치 과정을 정착시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은 본질에 있어서 폭력적 지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진한 이후의 제도 폭력이 지배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피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저항적 지반이 광범하게 형성된 것은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자연이라는 근본적 질서를 회복할 것과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는 노자의 반문화反文化 사상이 지배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비판 담론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항 담론과 대안 담론으로서 그 지반을 넓혀가게 됩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노자』를 읽는 독법讀法, 다시 말하자면 『노자』의 현대적 의미를 조명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 축적의 역사이고 자본 축적은 모순의 누적 과정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 누적된 모순으로 말미암아 축적 과정 그 자체의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는 전반적 위기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과 위기는 패권 국가들의 집단적 담합과 폭력적 개입에 의하여 그것이 억제된 상태일 뿐입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물리적 억압과 간섭이 그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와 의식구조에 있어서 엄청난 허구와 비인간적 논리가 구축됩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물리적 강제를 은폐하고 유화宥和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입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현대 자본주의는 그 어떤 체제보다도 강력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대중 조작(記號操作) 체계를 장악하고 이성의 포섭뿐만 아니라 감성의 포섭까지 완성해놓고 있습니다. 엄청난 건축을 완성해두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체주의자로서의 노자가 생환生還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노자의 언어와 담론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를 조명해내고 자본주의 문화의 허구와 총체적 낭비 체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노자가 생환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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