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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야 남이 모욕하는 법

   맹자는 공자를 잇고 있다는 일반적 통설과 달리 맹자는 공자에 대한 최대의 이단이라는 상반된 견해도 있습니다. 물론 맹자는 공자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제자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맹자는 자사子思의 문인에게서 학문을 배운 것으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사 역시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아니지요. 자사는 증자曾子의 문인으로 되어 있지만, 막상 증자는 공자 최만년最晩年에 입학한 제자로 공자보다 46세 연하여서 공자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였음이 지적됩니다. 더구나 증자의 아버지인 증석曾晳은 『논어』에 매우 부당하게 삽입되어 있는데 필시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맹자가 무리하게 공자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강의에서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나도 여러분도 양쪽 모두가 적합하지도 않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러한 맹자에 대한 상반된 견해는 공자와 맹자의 시대적 차이에서 상당 부분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자 당시에 진秦에서는 법가인 상앙商?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였고, 초楚와 위魏에서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전쟁으로 적국의 땅을 빼앗았으며, 제齊의 위왕威王과 선왕宣王은 병가兵家인 손자孫子와 전기田忌를 등용하는 등, 당시는 합종연횡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면서 오로지 전쟁을 능사로 여기는 그야말로 전국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비록 맹자가 공자와 마찬가지로 요순堯舜과 하夏·은殷·주周 3대 성왕들의 덕치德治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강조점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차별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엄격한 수기修己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지요. 「등문공」편騰文公篇에서 맹자는 왕량王良의 비타협적인 자부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진晉의 대부인 조간자趙簡子가 천하제일의 마부인 왕량으로 하여금 임금의 총신寵臣인 해亥의 사냥을 위하여 마차를 몰게 했습니다.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맞히지 못하고 돌아온 해가 왕량을 일컬어 천하의 형편없는 마부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왕량이 다시 한 번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가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쏘아 맞히었습니다. 그러자 해는 왕량을 일컬어 천하제일의 마부라고 칭찬했습니다. 조간자가 총신 해를 위하여 앞으로도 마차를 몰겠느냐고 왕량에게 묻자 왕량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사냥의 법도대로 마차를 몰았더니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법도를 어기고 궤우詭遇하게 하였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고서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리 그가 권세가라 하더라도 마차를 몰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궤우란 것은 아마 짐승을 옆에서 쏘게 해주는(橫而射之) 것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사냥하는 것(不正而與禽遇)을 의미하는가 봅니다. 맹자는 왕량의 그 법도를 잃지 않으려는(不失其馳)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원칙과 정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맹자에 관하여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일 것입니다. 출처는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 「모의」편母儀篇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고사입니다. 그 고사의 진짜 주인공이 맹모孟母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훈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맹모로 만들었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당사자가 맹모였다면 대단한 현모賢母는 아니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맹모는 아들이 주변에서 본 대로 흉내를 내자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이사를 갑니다. 처음에 아마 시장이었던가요? 그리고 묘지 부근으로, 마지막으로 서당 옆으로 이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세 번씩이나 이사한 다음에야 깨닫다니 현명한 어머니라 하기 어렵지요.

   나는 맹모보다는 한석봉韓石峰의 어머니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지도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맹모처럼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자식이 그것을 본받게 했던 것이지요. 가난한 떡장수였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끈 캄캄한 방에서 아들과 서로 겨루게 됩니다. 어머니는 떡을 썰고 석봉은 글씨를 쓰지요. 그리고 다시 불을 켜고 확인합니다. 어머니가 썬 떡은 가지런하지만 석봉의 글씨는 비뚤어지고 크기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석봉은 어머님의 솜씨에 비교해볼 때 자기의 글씨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닫는 것이지요.

   물론 이 게임은 공정한 게임은 아닙니다. 나도 붓글씨를 쓰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떡은 손으로 만져보면서 썰 수가 있지만 글씨는 만져보고 쓸 수가 없지요. 그렇긴 하지만 석봉의 어머님은 매우 훌륭한 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는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환경만을 만들어주는 맹모에 비해서도 훨씬 뛰어난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직접 자신의 일면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교육적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참된 스승의 모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극히 일부분만을 여러분과 함께 읽었습니다만 맹자의 사회주의社會主義와 민본주의民本主義는 오늘의 사회적 현실을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맹자는 그 사상이 우원迂遠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패자들에게 수용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맹자의 민본 사상은 패권을 추구하는 당시의 군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아마 제선왕이었지요?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맹자는 참으로 명쾌하고도 단호하게 답변하여 군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습니다.
   “인仁을 짓밟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짓밟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잔적殘賊한 자는 일개 사내(一夫)에 불과할 뿐입니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일개 사내일 뿐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단호하고 준열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맹자는 자기를 돌이켜보고 그 품성을 곧게 간추리기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끝으로 『맹자』 「이루 상」離婁上의 일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장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太甲篇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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