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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位와 응應

   『주역』 사상의 핵심을 관계론이라고 하는 경우 지금 설명하려는 위位와 응應의 개념이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위와 응 이외에도 『주역』의 관계론을 읽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만 위와 응에 대해서만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주역』의 독법에서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위位입니다. 즉 ‘자리’입니다. 어떤 효의 길흉화복을 판단할 때 그 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고 판단합니다. 대성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1(初), 2, 3, 4, 5, 6(上)의 여섯 개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여섯 개의 자리 중에서 1, 3, 5는 양효의 자리이고 2, 4, 6은 음효의 자리입니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 즉 1, 3, 5에 있는 경우와 음효가 음효의 자리인 2, 4, 6에 있는 경우를 득위得位라 합니다. 효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한 경우 이를 실위失位라 합니다. 양효가 음효의 자리 즉 2, 4, 6에 있거나 마찬가지로 음효가 양효의 자리인 1, 3, 5에 있는 경우가 실위입니다.

   효는 득위해야 좋은 것입니다. 양효라고 해서 어떤 자리에 있거나 항상 양의 성질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음효도 어떤 자리에 있거나 음효일 뿐이라고 하는 고정된 관념은 없습니다. 개별적 존재에 대해서는 그것의 고유한 본질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러한 개별적 본질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는 동양적 전통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운명도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금언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말은 처지에 따라 그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처지에 눈이 달린다”는 표현을 하지요. 눈이 얼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발에 달려 있다는 뜻이지요.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입장이라 합니다. 계급도 말하자면 처지입니다. 당파성과 계급적 이해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位)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리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지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보다 집이 크면 그 터의 기氣가 건물에 눌립니다. 고층 빌딩은 지기地氣를 받지 못하는 건축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땅에 건물을 너무 많이 쌓아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뉴욕이나 도쿄 역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터와 집의 관계뿐만 아니라 집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잘못된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서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능력과 적성에 아랑곳없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자리’나 ‘높은 자리’를 선호하는 세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70%의 자리’가 득위得位의 비결입니다.

   여담이었습니다만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 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得位와 실위失位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위位와 응應에 대해서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몇 가지 개념을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중中의 개념에 대하여 이야기합시다. 대성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효 중에서 제2효와 제5효를 ‘중’이라 합니다. 2효와 5효는 각각 하괘와 상괘의 가운데 효입니다.
『주역』에서는 이 ‘가운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일 위에 있거나 제일 앞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쟁 사회의 원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여러분도 강의 시간에 질문하라고 하면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지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것이지요. 중간은 무난한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산전수전을 두루 겪으신 노인들은 대체로 모나지 않고, 나서지 않고, 그저 중간만 지키기를 충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간과 가운데를 선호하는 정서는 매우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물론 중간을 매우 선호하는 편입니다만 그 선호하는 이유가 무난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바둑 1급은 비슷한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망의 적이 되고 있는 선두先頭는 물론 스타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이지요. 그 자리는 모든 영광이 머리 위에 쏟아질 것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매우 힘든 자리입니다. 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가장 첨예하게 걸리는 곳이 선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두가 전체 국면을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두는 겨우 자기 한 몸 간수에 여력이 있을 수 없는 고단한 처지입니다. 그와 반대로 맨 꼴찌는 마음 편한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아마 가장 철학적인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기를 쓰고 달려가야 할 곳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내가 무기징역 받고 감옥에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헌옷 입고 햇볕에 앉아 있을 때의 심사가 무척 편했던 기억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비록 편안하고 한적한 달관達觀의 공간이긴 하지만 그곳은 무엇을 도모하거나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후미진 공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관계 맺기가 어려운 매우 적막한 처소處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주역』에서는 중간을 매우 좋은 자리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가장 힘 있는 자리로 칩니다. 막상 가장 위에 있는 제6효인 상효는 물러난 사람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음효가 음의 자리에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는 것을 정正이라고 하면서도, 가운데 효 즉 중中이 득위했는가 득위하지 못했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음 2효와 양 5효는 중이면서 득위했기 때문에 이를 중정中正이라 합니다.
중정은 매우 높은 덕목으로 칩니다. 아마 여러분은 ‘중정’이란 현판이나 붓글씨를 많이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중정이지만 양 5효를 더욱 중요하게 봅니다. 음 2효가 하괘를 주도하는 효임에 비하여 양 5효는 상하 괘 전체의 성격을 주도하는 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응應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위位가 효와 그 효가 처한 자리의 관계를 보는 것임에 비하여 응은 효와 효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효가 다른 효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여섯 개의 효 중에서 1효와 4효, 2효와 5효, 3효와 6효의 음양 상응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괘의 1, 2, 3효와 상괘의 1, 2, 3효가 서로 음양 상응 관계, 즉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응입니다.

   『주역』 사상에서는 위보다 응을 더 중요한 개념으로 칩니다. 이를테면 ‘위’의 개념이 개체 단위의 관계론이라면 ‘응’의 개념은 개체와 개체가 이루어내는 관계론입니다. 이를테면 개체 간의 관계론이지요. 그런 점에서 위가 개인적 관점이라면 응은 사회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보다는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위失位도 구咎요 불응不應도 구咎이다. 그러나 실위이더라도 응이면 무구無咎이다”라고 합니다. 실위도 허물이고 불응도 허물이어서 좋을 것이 없지만 설령 어느 효가 득위를 못했더라도 응을 이루고 있다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지요.

   위보다 응을 더 상위의 개념으로 치는 것이 『주역』의 사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집이 좋은 것보다 이웃이 좋은 것이 훨씬 더 큰 복이라 하지요.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보면 응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장의 개념도 바뀌어서 최근에는 직장 동료들이 좋은 곳을 좋은 직장으로 칩니다. 위가 소유의 개념이라면, 응은 덕德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로 응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 이외에도 효와 효의 상응 관계를 보는 개념으로 비比가 있습니다. 이 비는 인접한 상하 두 효의 상응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응이 하괘와 상괘 간의 상응 관계를 보는 것임에 비하여 이 비는 인접한 두 효의 음양 상응을 본다는 점에서 응에 비해 다소 그 관계의 범위가 협소하고 시간대가 짧습니다. 그러나 기본적 성격은 관계론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상에서 『주역』 독법의 몇 가지 개념을 소개했습니다만, 그나마 너무 간략한 설명이었습니다. 『주역』의 주석서註釋書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해석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은 오히려 『주역』 이해에 더 장애가 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관계론의 재조명이라는 강의 목적의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것만을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효의 명칭에 관한 것입니다. 효가 처하는 위치 즉 아래위에 있는 효와의 관계에 따라서 그 명칭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마저 달라지는 것이지요. 당연히 그 성격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음효 위에 있는 양효 즉 양재음상陽在陰上인 경우를 거據라고 하고 그 의미는 공제控制입니다.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음효가 양효 아래에 있는 경우는 승承이라 합니다. 즉 음재양하陰在陽下인 경우를 승이라 하고 그 의미는 순종입니다. 그리고 같은 음효라 하더라도 그것이 양효 위에 있을 때 즉 음재양상陰在陽上일 때 승乘이라 호칭하고 그 의미를 반상反常 즉 역逆으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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