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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미학의 허위의식으로부터 삶의 진정성으로

  
   이제까지는 동양 사상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한 셈이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특징’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자칫하면 차이가 특징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이란 개념 자체가 서양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우리가 앞에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동서양의 비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전의 독법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2500여 년 전의 동양고전을 읽는 이유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양 사상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서양 사상과 비교하고 차이점을 지적한 것도 사실입니다. 근대사가 바로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역사이기 때문에 동양 사상의 관계론을 설명하면서 자연히 서구와의 비교 논의로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제 『시경』詩經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시경』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선 300여 편이 넘는 시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시의 내용이나 형식이 같지 않고 또 작시作詩의 목적과 과정도 판이합니다. 수많은 주註가 달려 있고 그 해석에 있어서도 대단히 큰 편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고전 독법에 비추어 『시경』을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가 사실은 관건이 됩니다.
우리가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에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국풍國風에 주목합니다. 『시경』의 국풍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라는 데 있습니다. 물론 정약용丁若鏞, 심대윤沈大允 같은 조선의 지식인은 주희朱熹의 국풍 민요설을 부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식인들이 임금을 바로잡으려는(一正君) 저작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던 조선 사대부들의 입장이 과도하게 투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국풍의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 광범하게 불려지고 또 오래도록 전승된 노래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민요民謠로 보아 틀리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 노래가 계속 불려지고 전승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詩의 정수精髓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眞情性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성과 진정성의 문제는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소위 상품미학商品美學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CF가 보여주고 약속하는 이미지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광고 카피는 허구입니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이버 세계 역시 허상虛像입니다. 가상공간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시경』 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되기보다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픔과 기쁨이 절절히 배어 있는 『시경』의 세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시경』의 시 한 편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지요.

遵彼汝墳 伐其條枚 未見君子 惄如調飢
遵彼汝墳 伐其條肄 旣見君子 不我遐棄
魴魚赬尾 王室如燬 雖則如燬 父母孔邇        ―周南, 「汝墳」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기다리는 임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저기 기다리는 님 오시는구나. 나를 멀리하여 버리지 않으셨구나.
방어 꼬리 붉고 정치는 불타는 듯 가혹하다.
비록 불타는 듯 가혹하더라도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계시는구려.
―「강둑에서」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은말殷末 주왕紂王의 사역이 이 시의 배경이라고 하지만 서주西周 말末로 보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제목은 「강둑에서」로 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이 시가 보여주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 연의 그림은 이렇습니다. 말없이 흐르는 여강, 그 강물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강둑, 그리고 그 강둑에서 나뭇가지 꺾으며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전쟁터로 나갔거나, 만리장성 축조 같은 사역에 동원되어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낭군을 기다리는 가난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땔감으로 나뭇가지를 꺾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병역이나 사역에 동원될 리도 없지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요. 두번째 연은 기다리던 낭군이 돌아오는 그림입니다. 자기를 잊지 않고 돌아오는 낭군을 맞는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은 돌아온 낭군을 붙잡고 다짐하는 그림입니다. 그 내용이 지금의 아내나 지금의 부모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시국에 대한 인식입니다. 방어의 꼬리가 붉다는 것은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방어는 피로하면 꼬리가 붉어진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왜 피로한지 알 수 없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방어는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왕실여훼’王室如燬란 정치가 매우 어지럽다는 뜻이지요. 전쟁과 정변이 잦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왕실이 불타는 듯 어지럽더라도 그러한 전쟁이나 정쟁에 일체 관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지요.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부모가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내의 논리지요. 소박한 민중의 삶이며 소망입니다.

   나는 이 「여분」汝墳이란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 시절의 어느 마을, 어느 곤궁한 삶의 주인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강둑의 연상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이 시를 읽으면 함께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역시 별리別離를 노래한 시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이 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물 언제나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이별의 아픔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읊기가 어렵습니다. 이 시가 우리나라 한시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 사신이 올 때면 부벽루에 걸려 있는 한시 현판을 모두 내리지만 이 시 현판만은 그대로 걸어두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시의 자존심인 셈이지요. 시인도 매우 훌륭한 사람임은 물론입니다.

   이 「여분」이란 노랫말이 어떤 곡에 실렸을까 매우 궁금합니다. 원래 『시경』에 실려 있는 시들은 가시歌詩였다고 합니다. 악가樂歌지요. 시(辭)+노래(調)+춤(容)이었다고 전합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정의情意가 언言이 되고 언言이 부족하여 가歌가 되고 가歌가 부족하여 무舞가 더해진다고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말로도 부족하고 노래로도 부족해서 춤까지 더해 그 깊은 정한의 일단이나마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악곡樂曲은 없어지고 가사歌詞만 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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