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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5) 오대산 상원사
신영복 | 성공회대 석좌교수
ㆍ시대와의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 아닐까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文殊殿)’ 현판은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의 부탁으로 썼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정념 스님은 당시 상원사 주지로 계실 때였는데 상원사가 화재를 입고 나서 법당과 선원을 분리하여 지으면서 현판을 다시 달아야 했었다. 상원사 입구의 표석글씨도 그 때 함께 쓴 것이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이다.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지혜’의 의미를 현판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난감하였다. 달포 이상 장고했다고 기억된다. 생각 끝에 결국 세 글자를 이어서 쓰기로 했다. 분(分)과 석(析)이 아닌 원융(圓融)이 세계의 본 모습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짧은 찰나라 하더라도 그것이 맺고 있는 중중(重重)의 인연을 깨닫게 되면 저마다 시공을 초월하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꽃으로 가득 찬 세상은 얼마나 엄숙한 화엄(華嚴)의 세계인가. 지혜란 바로 그런 깨달음일 터이다. 불가의 연기론(緣起論)이며 나로서는 ‘관계론’의 뜻을 담는 것이기도 했었다.

월정사에는 그 후 두 번 들른 적이 있지만 여러 해 만의 방문인 셈이다. 오대산은 이번 가을 유난히 잦았던 돌풍 때문에 이미 단풍이 많이 졌다고 했다. 우리는 월정사에서 정념 스님과 혜원 스님의 안내로 먼저 상원사 입구에 서 있는 표석을 찾았다. 표석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석이다. 키가 3m를 훨씬 넘고 너비도 두께도 황금비율을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 계곡에 묻혀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돌이라고 했다.

 

20111109_신영복_오대산상원사 .jpg 신영복 교수가 10여년 전 장고 끝에 쓴 오대산 상원사 표지석 앞에서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왼쪽)과 신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표석에는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그리고 ‘문수성지’ 세 글귀를 써야 했는데 글씨 배치가 쉽지 않았다. 역시 장고 끝에 오대산 상원사를 세로글씨로 쓰고 그 옆에 적멸보궁과 문수성지를 낙관(落款)처럼 놓았다. 낙관은 원래 인주로 하는 것이어서 주문(朱文)이 되어야 하지만 정념 스님은 벽사(邪)의 색인 금색으로 입혀 청정도량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표석글씨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눈 다음 곧이어 상원사로 올라갔다. 문수전 앞마당에 오르자 과연 명당의 기가 느껴진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겹겹의 원근 능선이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스님들이 선호하는 안거(安居) 1순위 사찰이 바로 상원사이다. 1시간을 덜 자더라도 정신이 맑을 뿐 아니라 안개와 바람마저 잦아든다고 했다. 글자 그대로 깨달음의 성지이고 지혜의 전당이다.

깨달음이 지혜의 본질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상원사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어린 동자로 현신하여 세조의 등을 씻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오대산의 1만 문수보살은 지금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수전에는 여느 법당과 달리 부처님 대신 문수동자와 문수보살을 나란히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한 몸이 둘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정념 스님은 한 몸을 둘로 나누어 모시고 있는 것이 바로 인(因)과 과(果)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연기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문수동자상은 ‘석굴암 본존불’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예술의 3대 걸작의 하나라고 했다. 단아한 이목구비와 미소 그리고 유려한 수인(手印)에 이르기까지 과연 빼어난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침 법당 앞에 있던 할머님들이 스님을 에워쌌다. 스님 모습이 문수동자와 너무 닮았다는 환성과 함께 입을 모아 ‘말씀’을 청했다. 스님은 주련 글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상한 설명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스님의 ‘말씀’에 연신 합장하는 할머님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비단 할머님들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말씀과 지혜’가 무엇일까. ‘말씀과 지혜’는 화두처럼 종일 생각을 떠나지 않는다.

두 분 스님과 할머님들 속에 섞여 종각에 이르렀다.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일 뿐 아니라 모양과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국보 36호이다. 종은 종소리가 퍼져나갈 드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종의 입지름이 줄어들면서 만들어내는 조용하고 겸손한 자태다. 그러면서도 그 속이 충만하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범종은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을 부처님 품으로 이끌어 주고 듣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한다고 한다. 그것이 곧 깨달음이고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정보 많다고 지혜 커질까

정념 스님이 종메를 풀었다. 종메는 고래(鯨)요, 종은 용뉴에 틀고 앉아 있듯이 용(龍)이다. 용과 고래의 한 판 승부가 바로 타종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 타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종소리는 과연 정념 스님의 설명처럼 용과 고래의 충돌이었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단정하고 겸손한 모습과 달리 종소리는 높은 파도가 되어 온 몸을 덮쳤다.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뜨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나는 나를 남겨 두고 종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대산 1만 문수보살의 조용한 기립(起立)이 감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종소리는 긴 여운을 이끌고 가다가 이윽고 정적(靜寂)이다. 소리가 없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을 적(寂)이라 한다. 1만 문수보살은 다시 산천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적멸(寂滅)이다.

소리의 뼈는 침묵이라는 시구를 남기고 요절한 시인의 죽음이 생각났다. 지혜의 끝 역시 침묵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따라 가본 종소리의 끝은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이 침묵이고 고요이고 적멸이긴 하지만 그곳에서는 감동의 ‘장(場)’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수보살이 보현보살을 만나고 다시 비로자나불을 만나고 삼라만상을 만나고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거대한 만남의 ‘장’이 전개되고 있었다. 타종은 협소한 주아(主我)를 끊는 탈주(脫走)이면서 동시에 더 큰 것과 만나는 접속(接續)이었다. 탈접동시(脫接同時)라고 했던가.

불가에서는 애초부터 세계를 분석하지 않는다.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깨달음이 지혜의 본질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의 양이 지식의 높이가 된다. 많이 쌓을수록 지혜가 커진다. 근대의 시작은 남의 지(知)를 내게 쌓을 수 있다는 신념의 출현과 함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의 누적이 결국 혼란이 되고 홍수가 된다면 그것을 지혜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것이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분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쌓고 소유하는 것으로 공부를 끝낸다. 공부란 깨달음이며 자기변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몇 년 전의 일이다. 한밤중에 전화가 울려왔다. 한 밤의 전화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깜짝 놀라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놀랍게도 편안한 목소리가 나를 맞았다. “선생님 달 보냈습니다. 받으세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전화는 끊어졌다. 월정사의 현기 스님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갔더니 과연 중천에 보름달이 와 있었다. 현기 스님이 보낸 달이었다. 소유란 무엇인가? 달(月)의 정(精)이란 자기가 깨닫는 것만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자기가 변화한 것만큼 몸으로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대산상원사_문수전.jpg  

신영복 교수가 쓴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현판. 불가의 연기론과 신 교수의 ‘관계론’의 뜻을 담아 세 글자를 이어서 썼다.


현판글씨의 인연으로 다시 찾은 상원사의 가을은 내게 참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사진기자의 요구로 섶다리 건너 오솔길로 들어섰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9㎞의 숲속 길이다. 정념 스님은 이 좁은 오솔길이 ‘지혜의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월정(月精)에서 문수(文殊)에 이르는 길, 달의 정기를 만나고 문수보살을 찾는 마음이 곧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지혜의 길에서 내내 울적한 심사를 달래지 못한다. 범종소리가 깨우쳐준 묵언의 지혜가 서울의 정보홍수 속에서 과연 어떤 정처(定處)를 얻을 수 있을까.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를 갈구하는 욕망과 소유의 고해에서 무소유의 설법이 어떤 여운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것인가. 산사의 가을에서 만나는 생각이 부질없고 쓸쓸하기가 이와 같았다, 마치 인적 없는 변방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 편 생각하면 진정한 깨달음이란 근본에 있어서 시대와의 불화(不和)이어야 하리라. 사건과 같은 충격 그리고 충격 이후에 비로소 돌출하는 후사건(後事件)이 깨달음의 본 모습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마침 다람살라에서 돌아온 현기 스님의 전화가 왔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간단하였다.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용과 고래의 한판 쟁투가 우리시대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혜의 현실적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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