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진담

by 김자년 posted Nov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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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진담>

앞에서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을 소개했는데, 책을 보지 않을 것 같은 분들을 위해 제목과 관련된 농담에 대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여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는 거의 누구나 알고 있는 태조 이성계와 왕사王師 무학대사 간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대사, 우리끼린데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고, 오늘은 농이나 한번 합시다.”
“좋지요.”
“누구부터 할까요.”
“전하부터 하시지요.”
“그러지요. 그럼 나부터 시작합니다. 대사의 상판은 꼭 돼지처럼 생겼소이다.”
“그런가요. 전하의 용안은 부처님 같으십니다.”
농담을 하자는데, 무학이 정색으로 자신을 찬양하자, 이성계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어허, 대사. 농담하는 시간이라니깐.”
“전하,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옵니다.”
이성계는 이 한 방에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이 농담같은 진담을 꿰뚫어 보고 가슴속 깊이 진담으로 받아들여 열반이라는 담마가 생겨난 자가 ‘붓다(또는 아라한)’입니다.
이를 깊이 꿰뚫어보지 못하고 농담으로 받아들여 그럴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떡이며 웃고 마는 자는 ‘일반 중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농담의 의미를 깊이 꿰뚫어 보기는 하였지만 업습業習 때문에 무의식적인 가슴속 깊은 저변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여전히 괴로움을 느끼므로 업습을 녹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중생(수행자)’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에서 인용하는 이야기는 농담 같지만 ‘붓다의 치명적 농담’인 진담입니다.
이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 해당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깊이 이해했다면 책 전체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으며, 책을 덮고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재미로 계속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호잔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재미로 치자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으뜸입니다.
‘즉문즉설’의 법문으로 잘 알려진 법륜스님이 왜 질문자에게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에게 우선 ‘참회기도’를 하라고 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륜스님이 말하는 참회기도는 단순히 욕망을 바라며 붓다에게 하는 기도도 아니고. 욕망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붓다에게 하는 기도도 아닙니다.
기도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법문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연기실상을 보고 가슴깊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위 이야기를 깊이 꿰뚫어 보고 받아들이기에 법륜스님은 어떠한 질문에도 바르게 답하며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가르침을 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학대사나 법륜스님은 가르침의 면에서 거의 붓다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잔은 무학대사나 법륜스님이 아라한에 이르렀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호잔은 무학대사나 법륜스님의 가르침은 붓다(또는 아라한)의 가르침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겠습니다.
무학대사는 전해오는 이야기 속의 붓다로, 법륜스님은 현재 즉문즉설을 하고 있는 살아 있는 붓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연기 실상을 보고 이해하게 되면, 별도의 붓다나 무학대사나 법륜스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호잔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담마의 연기현상 만이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담마라는 실체에 의해 연기현상이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담마도 실체가 아니며, 연기원리(아상카라 담마)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담마(상카라 담마)이며 연기현상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내일은 이번에 수능시험을 본 아들이 수시(2차)의 논술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옵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이틀간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담마의 연기현상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며, 말해봐야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며, 자신이 붙들고 있는 자아라는 정체성에 혼란스러움만 가져오게 되어, 이어지는 시험에 좋지 않는 영향만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자신도 아빠도 대구와 서울과 그 중간의 모든 인식되는 것들도 어떤 실체로 실체화하여 존재자 또는 존재물로 이해하겠지만, 현재는 이 상태로 도덕적 계율을 지키면서 큰 괴로움없이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호잔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분은 그냥 ‘호잔이 허튼 소리를 하고 있구나’하며 이 포스트를 가볍게 읽거나,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며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로 그치시면 됩니다.
위 이야기에서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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