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체면을 구기다.

by 좌경숙 posted Sep 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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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체면을 구기다.

어느 날, 우연하게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나는 이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무척 아끼고 있습니다. 웬만큼 읽고 좋았던 책들은 모두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 북리뷰를 하고 추천을 하고 인용도 하고 한껏 활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는 물론 표지그림부터 번역가까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사람들에게 제목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신비주의로 나가면서 책에 밑줄도 긋지 않았답니다.

영문학 교수였다가 35살에 루게릭 병에 걸려서 체면을 구기며 떨어지는 법을 배웠고 몇 년 안에 죽게 되리라는 예언보다 오래 살아 그 후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출간한 책입니다. 이제 구월을 맞이하였으니 새롭게 이 귀한 책을 한 쪽 열어 보이겠습니다. 아까운 글이니 하루에 한 번씩만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 책 57쪽에 나오는 거북이 이야기입니다.

“거북의 등딱지가 갈라진 이유를 말해주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설이 있다. 하루는 거북이 숲속을 걷고 있는데, 남쪽으로 간다고 떠들어대는 새떼를 만났다. 호기심이 동한 거북은 자기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새 두 마리가 막대기의 양쪽 끝을 발로 움켜잡고, 거북은 힘센 턱으로 그 막대기를 단단히 물었다.

그런 식으로 새들은 거북을 들어 올려 숲 위로 날아올랐다. 위에서 내려다 본 광경에 황홀해진 거북은 새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팔다리를  흔들어댔지만 새들은 자기네 관심사만 이야기했다. 마침내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거북은 눈 아래 보이는 광경이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것은 물론 실수였다. 이제 거북은 저 밑에 있던 숲이 자기를 마중하러 쏜살같이 올라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북은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추려 등딱지 속으로 끌어들이고 땅에 떨어졌다. 등딱지가 땅바닥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그래서 등딱지가 좍좍 갈라졌다. 하지만 거북은 운이 좋았다. 연못 근처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거북은 멍들고 아픈 몸을 질질 끌고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간 다음, 바닥의 진흙에 굴을 파고 들어가 봄까지 잠을 잤다. 오늘날 까지도 거북은 자기가 새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 등딱지에 그 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 차츰 쇠약해지는 전설적인 육체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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