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고도(古都)입니다. 당신은 이 도시를 '역설(逆說)의 도시'라 하였습니다. 일찍이 표트르 대제가 낙후한 제정(帝政) 러시아를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혼신의 정열을 기울여 이룩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제정을 붕괴시킨 혁명의 도시가 되어버린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하였지요.
'유럽을 향하여 열린 창'이었던 페테르부르크는 그 열린 창으로 쏟아져들어온 새로운 사상으로 도리어 제정 러시아의 전제 정치가 역조명되고 결국 제정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혁명의 자취였습니다. 최초의 사회주의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된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05년 빵과 자유를 외치며 행진해온 민중들이 총탄 세례를 받고 쓰러진 궁전 광장, 농노제와 전제 정치를 반대하여 궐기한 지식인들의 양심이 좌절되 데카브리스트 광장, 그리고 1917년 10월 혁명의 신호를 올린 오로라 순양함 등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혁명의 자취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자취를 찾아다니는 동안 페테르부르크는 혁명의 도시라기보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혁명과 예술' 이것 역시 우리들의 도식에서는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에는 100개나 되는 섬과 네바 강의 수많은 지류와 운하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들이 365개나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중후한 건물에는 정교한 조각들이 기둥과 벽면을 장식학고 있으며, 울창한 수목들로 이루어진 공원에는 적재 적소에 서 있는 조각상들이 이곳에서 살다 간 예술가들의 심혼을 되살려 놓고 있습니다. 페테르부르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격조 높은 예술의 향기를 뿜어줍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집필했던 집이 찾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남아 있던 모스크바와는 대조적으로 페테르부르크 교외에 있는 푸슈킨의 유년학교는 넓은 호수와 아름다운 정원이 말끔히 손질되어 있었습니다. 푸슈킨은 톨스토이와 달리 이곳을 찾는 숱한 방문객들과 더불어 '언제나 새로운 시인'으로 생생히 살아 있었습니다. 톨스토이와 푸슈킨의 차이라기보다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의 차이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발견한 것은 이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은 물론 이 도시에 묻혀 있는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유적에 대학 자부심이 아니라, 이곳에서 심혼을 불사르고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함께 껴안는 애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애정은 페테르부르크를 모독하는 어떠한 전제와 침략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혁명으로 역사의 무대에 솟아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80만 명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900일에 걸친 독일군의 포위를 견디는 저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고 강한 사람들이라는 부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 도시에서 지금까지도 그들의 정신을 나누고 있는 예술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고리키, 고골리,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사랑했고 이 도시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푸슈킨의 동상이 서 있는 예술 광장에는 그의 동상을 가운데다 두고 오른편에는 발레와 오페라의 세계적인 명소인 무소르크스키 극장이 있고 왼편에는 러시아 민속박물관이 러시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뒤편에 있는 러시아 미술관에는 쉬시킨의 아름다운 '자연'과 레핀의 '볼가 강의 배 끄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칸딘스키의 '추상'에 이르기까지 역대 화가들의 명작들이 그 긴 전시장을 가득히 메우고 있습니다.
맞은편에는 유명한 레닌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장이 있습니다. 수석 지휘자 체미르카노프가 지휘하는 파멜라 프랭크의 바이올린 협연을 알리는 포스터도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3,500원짜리 입장권을 사면서, 10만원이 넘는 입장권을 도로 팔까 말까 망설였던 서울 공연장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에닌 필 연주장은 흡사 연인들의 만남 같은 다정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람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음향을 살려내는 연주장의 구조뿐만 아니라 연주자와 관객들이 나누는 애정의 공감이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입석까지 가득 메운 연주장에서 러시안 카니발의 음률과 함께 이루어내고 있는 연주자와 관객의 일체감은 또 하나의 예술이었습니다. 나는 그 공감의 높이와 넓이에서 다시 한번 이 도시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오만을 '죄'로 규정하고 그것을 벌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오만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이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오만이건, 오만은 애정이 결핍될 때 나타나는 질병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애정은 오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황제이건, 그것이 이념이건, 또는 어떤 개인이건 진정한 애정은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페테르부르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테르부르크는 결코 역설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의 숨결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애정 속에서 혁명과 예술이 하나로 융화되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페테르부르크는 그런 의미에서 흔히 말하는 도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들이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단지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론 수많은 것을 심고 가꿔나가야 함에 틀림없지만 결국은 사람을 만들어내고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애정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는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도시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심혼을 깨우고 결코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힘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가꾸어주리라 믿습니다.